빅또르 김은 나를 힘껏 부둥켜안고 놓아 주려질 않았다. 숨이 턱턱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채린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되뇌었다.

빅또르 김이 나를 붙잡고 있는 동안 경찰과 영사관 직원 그리고 야로슬라브, 검안의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풀숲을 헤치며 도로에서 30미터쯤 떨어진 구렁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 중 한 사내는 나뭇가지를 꺾어 풀섶을 툭툭 치며 구릉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사내들은 어떤 특정한 지점에 시선을 멈추고 유심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검안의로 보이는 사내가 높이 손을 치켜들어 빅또르 김을 불렀다. 그는 나를 그곳으로 데려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곳에 있는 사체를 직접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빅또르 김은 야박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샛노랗던 하늘빛이 제 색깔을 찾았을 때쯤에야 빅또르 김의 부축을 받으며 숲속으로 다가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채린의 모습이 아지랑이 같이 아른거렸다.

사내들이 둘러선 주변으로 다가가자 동물의 사체 썩는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얕은 습지대로 형성된 그곳에는 자작나무 뿌리가 뒤엉킨 사이로 아무렇게 모아놓은 희멀건 사체가 보였다. 사체는 토막 난 채 버려진 탓인지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피살자의 신원을 알아볼 수 있는 신체 부위들은 현장에 없었다. 토막 난 몸통부분만 자작나무 뿌리사이에 버려져 있었다. 피범벅이 된 그것은 도저히 사람의 주검으로 볼 수가 없었다. 들짐승에 의해 상당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

나는 주검을 보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헛구역질이 나서 더 이상 지켜 볼 수가 없었다. 고약한 냄새만 눅눅한 습기 속에 엉겨 있었다.

그것이 채린이라고 믿지 않았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승용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 나왔다.

현장을 둘러 본 경찰과 검안의가 내가 선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얇은 라텍스 장갑을 허물을 벗기듯 벗어 던지고 검안 내역서를 내게 내밀었다. 일정한 양식을 갖춘 검안서에는 작은 글씨로 그의 소견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혈액형 AB. 나이 30세 정도. 숨진 지 일주일정도로 추정됨. 정확한 사인은 심한 자상으로 추정하기 어려운 상태임. 신체의 크기로 미루어 동양계 여성으로 보임. 골격형성 정도로 미루어 키가 160 센티미터쯤으로 보임. 몸은 야윈 편이며 신체 특이점 발견치 못했음. 발견 부위가 몸통 부위와 약간의 팔 부위 등에 불과해 더 이상의 추정은 곤란함.”

그는 볼펜에서 흘러나온 잉크를 여백에 문지른 뒤 계속해서 적고 있었다.

특징. 사체의 목 부위에 부분적으로 청색흔 소견이 보이며 그 바로 아래쪽에 0.5센티미터 크기의 표피박탈을 동반한 색흔 소견이 보임. 또 몸통 후면으로 보이는 부위에 침윤성 사반이 뚜렷이 보임. 다른 곳에서 목 졸려 피살된 뒤 토막 났으며 그후 이곳으로 사체가 이동됐을 가능성도 높음. 사체는 예리한 흉기로 절단된 것으로 추정됨…….”

검안의는 끝으로 중요표시를 한 뒤 자신의 의견을 짧게 적었다.

현장을 둘러본 블라디보스토크 경찰서 소속 봐냐글림 수사관의 진술과 본인의 검안 결과 실종된 한국인 김 채린의 사체로 판단됨.”

검안의는 그곳에 자신의 사인을 한 뒤 마지막 부분에 버릇처럼 볼펜의 찌꺼기를 짓이겨 놓았다.

나는 검안서를 읽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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