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산부인과 의사가 낸 헌법소원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가 11일 1953년 낙태죄 도입 이후 66년 만에 사실상 위헌인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린 가운데 대전지역 여성단체 등이 일제히 환호하고 나섰다.

대전 여성주의 잡지 ‘보슈’의 권사랑 대표(25)는 이날 <디트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가 여태까지 제한해왔던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준 판결”이라며 “이 결정이 호주제 폐지가 이뤄졌을 때처럼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지점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충남대학교 여성주의 동아리 ‘빅웨이브’의 이상민 학생대표(23)도 “그동안 여성으로써 낙태법을 당장 뜯어고쳐야 하는 얼토당토한 법으로 느껴왔다”면서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 때로는 출산을 억제하고 때로는 장려하며 여성의 몸을 '공공재' 취급하던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다"고 환호했다.

대전여성단체연합 7개 회원단체도 성명을 통해 “그동안 국가는 여성들의 임신중단 결정을 단죄해 건강권을 침해하고 사회적으로도 낙인찍어 왔다”며 “이번 결정으로 국가가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삼았던 지난 과거에서 단절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환영 입장을 밝혔다.

헌재는 지난 2012년 8월, 헌법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낙태죄 처벌은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후 7년 만에 미투 운동과 여권 권익 신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면서,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다는 여론이 크게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반면 종교계는 “깊은 유감”을 표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태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생명원칙에 어긋난 판결”이라며 “여성의 건강과 출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행법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2시 헌재청사 1층 대심판정에서 자기낙태죄(형법 269조)와 동의낙태죄(형법 270조)를 규정한 형법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나머지 3명과 2명이 각각 단순위헌과 합헌을 결정했다.

헌법소원의 중심이 된 법 조항은 산모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하도록 한 형법 269조 자기낙태죄와 산모의 낙태를 도운 의사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형법 270조 의사낙태죄다. 

헌법불합치란 법 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혼란을 감안해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결정이다. 특정 시점 이후로 대상 조항이 개정되지 않으면 바로 효력을 상실한다. 

이에 헌재는 "늦어도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개선입법을 이행해야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며 2021년까지 국회에 입법 개선을 촉구했다.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로 결과가 나오면서 기존 낙태죄로 처벌 받았던 사람들의 무죄 판단은 무산됐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저조한 출산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 또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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