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재단이 주는 호암상은 ‘한국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한국에서 주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이란 뜻이다. 수상자에겐 상금 3억 원과 순금(187.5g) 메달이 수여된다. 2019년 호암상 수상자 5명이 며칠 전 발표됐다. 호암재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상(마빈 천 예일대 교수)과 공학상(앤드루 강 UC샌디에이고 교수)은 외국인이 받고, 의학상(오우태 KIST 뇌과학연구소장)과 예술상(이불 현대미술작가)은 한국인이 받는다. 모두 얼굴 사진이 나와 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수상자의 얼굴이 없다. 수상의 주체가 단체이기 때문이다. 대전 충청 지역 이주 외국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러브아시아’가 주인공이다. 2002년 김봉구 목사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 설립한 대전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출발한 단체다. 김 목사는 오갈 데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의 피난처(쉼터)로 외노센터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임금체불 산재 등의 법률상담도 해주었다. 한글도 가르치고 무료진료까지 봉사의 범위를 넓혀갔다.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늘면서 부속기관도 늘어났다. 2010년 은행동 대우당 약국 뒤편에 외국인종합복지관을 차리고 관장을 맡아오고 있다. 이젠 목사보다 관장 직함이 더 익숙하다. 2011년엔 사단법인 ‘러브아시아’를 탄생시키며 봉사의 결의를 더욱 다졌다. 러브아시아 이사장은 김용우 목사 임제택 목사에 이어 현재는 박희철 목사가 맡고 있다. 러브아시아를 이끄는 주인공들은 훨씬 많다. 무료진료 의료진만도 600명이나 된다. 김 관장이 처음 시작할 때 4명이던 것이 이렇게 늘어났다. 이들을 포함한 모든 러브아시아 봉사자가 이번 수상의 주인공들이다.

러브아시아, 정부 지원 없어 외국인 노동자 보살핀 점 높이 사

봉사 부분 수상자 선정에서 러브아시아를 높이 평가한 부분은 ‘정부 지원 없이 외국인을 보살펴 온 점’이었다고 한다. 3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을 정부지원 없이 보살피고 있다는 점을 높이산 것이다. 사업 보조금을 신청해서 선정되면 지원을 받는 경우는 일부 있었지만 인건비 운영비 등은 지원이 없었다. 러브아시아가 해온 일은 정부가 세금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다. 그 일을 정부 도움 없이 민간단체가 해왔으니 대단한 일이다.

돈도 없는 민간단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왔을까? 김 관장에 따르면 1년에 3~4억 원씩 들어가는 비용을 주로 후원금을 통해 자체 조달해왔다. 그러나 후원금이 갈수록 줄면서 외국인복지관 임대료 지급도 1년 넘게 밀려 있다. 김 관장이 이리저리 돈을 융통해보고 있으나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자금 고통 때문에 몸무게도 작년에 7kg나 줄었다.

정부는 2007년 ‘거주외국인지원조례(안)’을 만들어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노동자를 보살피도록 권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살피는 일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임무다. 대전에선 가난한 민간단체가 그 일을 떠맡으면서 민간인이 고통을 떠안고 있다. 다른 지방은 그렇지 않다. 경기도는 손학규 도지사 시절 외국인노동자복지관 4곳을 만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살폈다. 충남도 또한 10년 전에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를 만들었고, 기초자치단체인 천안시도 벌써부터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대전시만 여기에 무관심이다.

대전시민에겐 자랑스런 상, 대전시에겐 부끄러운 상

허태정 시장은 작년 시장선거 때 ‘외국인통합지원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시는 100억 원의 사업비 규모의 외국인지원센터 설립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용역비 5000만 원도 세워놨다고 한다. 예산만 충분하다면 규모를 키워도 좋지만 이쪽 분야 사람들은 사업이 늦어지거나 말로만 그칠까 걱정한다. 계획이 어떠하든 민간에서 떠맡고 있는 부담부터 당장 줄여줘야 한다. 대전시에 그런 계획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시장이 보살펴야 할 사람들을 누군가 대신해서 보살펴 왔다면 그 비용을 조금이라도 대주는 게 마땅하다. 러브아시아의 수상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단체가 해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란 말은 도와줘야 할 대전시가 도와주지 않아서 받는 상이라는 뜻도 된다. 러브아시아의 수상은 대전시민들에겐 자랑스럽지만 대전시에겐 부끄러운 상이다. 

김봉구 관장은 수상 소식에 외국인종합복지관의 밀린 임대료 등 빚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는 점에 크게 안도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살피느라 지게 된 빚을 왜 민간단체가 주는 상금으로 메워야 하는가? 지금 대전의 3만 외국인들에게 대전시장은 허태정 시장이 아니라 박희철 이사장과 김봉구 관장이나 마찬가지다. 허 시장이 이들에게도 진정 시장이고 싶다면 당장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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