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살던 우리에게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 비약적인 경제성장기를 거친 뒤 많은 사람들은 영양과다와 비만을 고민하고, 다이어트를 좇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불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치룬 뒤, 1989년부터 해외여행 자유화를 맞았다. 외국을 여행한다는 것이 특권층의 상징처럼 인식되던 우리가 이제는 누구라도 여권만 있으면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직접 외국에 나가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국민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우리도 지구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1960년대 서울 경복궁이나 민속촌 같은 고궁과 관광지를 찾는 일본인들이 여행사 가이드가 높이 쳐든 삼각 깃발아래 유치원생처럼 줄을 지어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았던 우리가 30년 뒤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 외국에 나갈 때에도 음식과 물이 입에 맞지 않아서 햇반. 라면 같은 비상식량은 물론 김치, 깍두기 같은 밑반찬과 김, 오징어 등 군것질거리를 많이 싸들고 다녔다. 그러던 우리가 여행사 패키지가 아닌 친구나 연인 혹은 가족끼리 떠나는 자유여행이 크게 늘었다.

비상식량과 밑반찬을 챙겨서 떠나는 비중도 크게 줄었다. 더불어 소문난 현지음식을 찾아나서는 마니아들도 많이 생겨 앞서 다녀온 여행객들이 남긴 맛집 정보를 검색해서 찾아다니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젊은이들은 이런 맛집을 찾아서 해외여행을 나서기도 한다. 

우리가족도 패키지여행을 하다가 2014년부터 패키지여행 대열에서 벗어나 자유여행을 다니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처음 찾아가는 나라는 패키지여행을 하는 얼치기 여행가족이 되었다. 그래도 자유여행을 나설 때에는 가족끼리 모여서 우리수준에 맞는 호텔을 골라  예약하고, 식사도 숙박한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반 이외에 점심․저녁은 현지 맛집을 검색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이런 패턴은 대만여행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대만에서도 입소문난 길거리음식이나 맛집이 많다. 가령, 타이베이에는 스린 야시장(士林夜市), 용산사 옆의  화시제 야시장(華西街夜市),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사대 야시장(師大夜市),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시장이지만 로컬 음식과 현지인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닝샤 야시장(寧夏夜市) 등 10여 군데의 야시장이 있다. 그중 타이베이시 스린구에 있는 스린 야시장은 대만에서도 대표적인 야시장이자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이라고 한다.

본래 야시장은 밤에만 문을 여는 시장을 뜻하지만, 대부분은 낮에도 장사를 하고 밤이 되면 더 많은 상인들과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그런데, 대만의 야시장은 같은 중국인이라 해도 보기에도 흉측한 전갈, 지네 같은 몬도가네식인 북경의 왕푸징거리(王府井大街)의 포장마차와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족은 국립고궁박물관과 대만원주민박물관을 둘러본 뒤 시내로 들어오다가 장개석 총통의 관저였던 서린 관저(西林官邸)를 관람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스린 야시장 입구에서 내렸다. 그러나 타이베이 시내에서 곧장 스린 야시장을 찾아가려면, 단수이신이선 젠탄역(捷運劍潭站)에서 내리면 도보로 약6분 거리에 있다. 참고로 스린 야시장은 명칭은 ‘서쪽에 있는 야시장’이지만, 단수이신이선 스린역(捷運士林站)에서 내리면 약9분 정도 걸리므로 젠탄역에서 내리는 것이 훨씬 가깝다. 
 
스린 야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온통 먹거리, 값싼 옷가지며 휴대폰 고리 등 잡화점들이 빽빽하고, 행인들이 붐비는 것은 우리네 여느 시골 장터 모습과 비슷하다. 다만, 야시장 골목에도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교 종합사원인 자성궁(慈誠宮)이 마치 하나의 점포처럼 울긋불긋한 단장과 함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대만에서는 사원이 시민들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스린 야시장은 약간은 노후화된 지하 3층, 지상 1층의 상가건물로서 큼지막한 네온 간판이 멀리서도 눈에 띄어서 야시장을 찾아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3층 콘크리트 상가건물에서도 야시장은 지하 1층 전부이고, 1층은 잡화류, 채소류, 과일류 등을 판매하고, 지상 2~3층은 주차장이다. 시장 건물 양쪽에 야시장 입구임을 알려주는 화살표시와 함께 안내판이 걸려있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세 군데나 있어서 크게 혼잡스럽지도 않다,

야시장의 점포수는 약 380여개나 된다. 각 점포마다 상호와 메뉴, 그리고 가격을  적은 안내판이 현란하게 걸려있지만, 이런 메뉴판이 없더라도 무엇을 얼마에 파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다. 가게들은 벽을 등지고 통로를 항해서 온갖 먹거리를 팔지만, 한 가운데에도 길게 네모 형태로 있어서 여행객은 통로를 따라 한 바퀴 삥 돌아보면서 음식 메뉴들을 눈요기한 뒤, 음식을 고른다.

점포마다 형형색색의 먹거리를 보고 눈요기 한 뒤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더러는 먼저 다녀간 친구들로부터 전해 받은 음식 메뉴와 점포의 번호까지 알고 곧장 그 점포로 직행하기도 한다. 야시장에서 파는 음식들은 티본스테이크, 우육면 등 보통 1인당 한화로 5천원에서 1만원이면 괜찮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스린 야시장에서는 지상의 점포들과 달리 긴 의자에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지상의 점포들과 달리 대부분 식사 메뉴라는 점이 특징이다. 서린 야시장은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퇴근길에 잠깐 들러서 저녁을 해결하기도 하고, 또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연인들이 부담 없이 찾아오는 데이트 코스라고 한다. 

그런데, 서린 야시장의 점포들은 개인소유가 아니라 타이베이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공간이다 보니 어느 나라 어느 도시처럼 소매치기, 소지품 분실, 미아 발생이 자주 벌어진다. 특히 낯선 외국여행객들을 노린 소매치기 사건도 급증해서 각국 언어로 된 소매치기 경고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또, 상인과 여행객 사이에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보디랭귀지를 하다가 시식 음식인줄 알고 냉큼 받아먹은 음식이 사실은 판매하는 것이었다느니 하는 부당강매로 피해를 입은 외국인들의 사례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타이베이 시 당국에서는 이런 마찰을 없애기 위해서 정찰제 가격표시, 저울을 이용한 측정 등 을 의무화하고 위반자를 단속한다고 하지만, 공무원이나 경찰관들이 순찰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먹거리 천국인 스린 야시장에는 어느 나라에서 온 여행자이건 그 입맛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먹거리가 가득하지만, 우리나라 동대문시장처럼 24시간 열리지 않고 오후 5시부터 11시 사이에만 문을 연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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