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40]
탈북자 [140]
  • 이광희
  • 승인 2019.04.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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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토막난 변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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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호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킬 때였다. 채린의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겨우 눈을 붙였을 때쯤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전날 저녁을 같이했던 빅또르 김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급했다.

장 기자님. 지금 당장 스푸트니크 농장지대로 나와야겠습니다. 그리로 가는 길이 외길이니까 나도 지금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스푸트니크 농장지대라니요.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불길한 예감이 가시처럼 다가섰다.

그것은 묻지 마시고 알렉세이가 보낸 사람 그곳에 있지요. 빨리 바꿔주세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자고 있으면 깨워주세요.”

야로슬라브를 깨웠다. 그는 부스스 눈을 뜨고 빅또르 김의 전화를 받았다. 반쯤 감겨진 눈을 끔벅거리며 빅또르 김의 전화를 받았으나 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내 눈알에 힘이 들어갔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야로슬라브는 즉시 긴장된 모습으로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었다. 좀체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그는 내게 빨리 옷을 챙겨 입으라고 말하며 나를 다그쳤다. 다급한 일이 생긴 것이 명확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왜 호들갑을 떠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기습이야. 스푸트니크 농장 지대라니…….’

나는 순간적으로 중국계 마피아들의 기습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온몸이 영문도 모른 채 부르르 떨려왔다.

이번에는 또 어떤 놈들일까?’

야로슬라브는 내가 차에 오르자 싸늘하게 식은 포도를 따라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새벽인 탓에 도로가 유달리 한산했다. 행인들은 물론 지나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도심 전체가 유령의 도시같이 시간이 멎어 있었다. 야로슬라브는 쌍라이트를 켠 채 어둠을 뚫고 도심을 관통했다.

시내를 벗어나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길을 따라 30분을 달렸을 즈음에 밖이 훤하게 밝아왔다.

나는 내달리는 차 안에서 야로슬라브에게 수차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스푸트니크 농장지대란 말만을 되풀이했다. 간간이 어둠 속에서 졸고 있는 신호등을 만났지만 그런 것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승용차가 엔진 깨지는 소리를 낼만큼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깊이 밟았다.

새벽 한기를 머금은 러시아의 농촌 지역은 겉으로 보기에 한가하고 풍요롭게 보였다. 낡은 판자로 둘러쳐진 양철지붕의 농가에서는 아침준비를 하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거미줄같이 나무에 걸렸다. 차창 틈사이로 숨어드는 바람이 뼈를 시리게 했다.

야로슬라브는 우수리스크 쪽으로 달리던 차의 핸들을 꺾어 지금까지 달리던 아스팔트 도로와 전혀 색다른 맛이 나는 비포장도로로 차를 몰았다.

우거진 숲 사이로 난 도로는 세석이 깔려 있었으나 제때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달리 덜컹거렸다.

나를 태운 승용차는 낡은 철길을 지나 한참 동안 좁은 숲 속을 파고들었다. 어둠이 내리 깔린 길모퉁이에서 이름 모를 짐승이 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차를 가로막을 것 같았다. 길바닥에 깔린 세석은 이슬에 젖어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을 때마다 유리조각을 깔아 놓은 듯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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