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65] “송구하다”와 “문제없다” 엇갈린 행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이번 주 청와대는 김의겸 전 대변인 사퇴 이후 장관 후보자 낙마로 뒤숭숭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장관 후보 임명에 반대하는 야당의 목소리가 높지만,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태세입니다. 춘추관에서는 ‘7대 인사 원칙’을 두고 윤도한 국민소통 수석과 기자들이 연일 논박을 벌였는데요.

청와대는 부실 인사 논란에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미흡했다. 송구스럽다”면서도 민정-인사라인 책임론에는 손사래를 칩니다. 여당에서조차 인사검증이 더 철저해야 한다는데도, 윤도한 수석은 “인사-민정 라인에서 특별한 문제가 파악된 것은 없다”고 감쌌습니다.

장관 후보자 한 명은 ‘해적 학회’로 불리는 부실학회 참석 사실을 발견하지 못해 집권 이후 처음으로 지명을 철회했습니다. 또 다른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와 자녀 편법 증여 의혹 등에 비판 여론이 커지자 자진 사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윤 수석 해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에는 문제없다”는 윤 수석 발언은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마치 맹수에 쫓기던 타조가 머리만 모래에 박고 숨었다고 하는 것과 별 차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어제(4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인사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인사추천위원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 원칙은 누가 만들라고 명령한 게 아닙니다. 이 정부 스스로 만들어 발표한 겁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부실 검증 논란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 ‘문제’이고, 책임자를 문책하는 건 당연합니다.

문 대통령은 그간 7대 인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장관 후보자가 여럿이었음에도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고위공직자는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구하다”가 면죄부가 될 수도, “문제없다”가 가치판단의 근거가 될 수도 없습니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합니다. 인사만 잘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대대적인 인사검증시스템 쇄신을 통해 국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서둘러야 합니다. 그것이 곧 이 정부가 표방하는 ‘소통’ 아니겠습니까.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참모진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청와대 참모진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 이후 파격 인사를 했습니다. 초대 국무총리에 호남 출신 이낙연 당시 전남지사를 임명했는데요. 비(非) 영남, 비문(非 문재인)을 끌어안으며 ‘탕평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총리 역시 위장전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또 민정수석에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기용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비(非) 검사 출신은 한명도 없었으니, 단연 파격이라고 봐야겠지요.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최초 ‘여성 인사수석’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조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고위공직자인사검증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민정과 인사에서 보여준 ‘원칙’은 국민 정서의 괴리감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정부부터 원칙을 지키려 들지 않고, 잘못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면, 어느 국민이 국가를 신뢰하고 따르려 하겠습니까.

정권이 바뀌었어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 ‘이게 나라냐’며 촛불 높이 들어 정권을 교체한 국민들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 참석한 한 청년단체 대표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한 게 없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사청통(萬事靑通 모든 일은 청와대로 통한다)’이란 비판을 받는 청와대가 깊이 새겨들을 대목입니다. 문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앞에 겸손한 인사를 해 주기 바랍니다.

지난 3일 경남 창원 성산과 통영‧고성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미니 선거’였지만,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민심은 현 정부에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민심을 벗어난 정치는 파격보다 파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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