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63] 국민은 불안하고 선거는 다가오나
검찰‧경찰‧정치, 개혁 대상 아닌 존경 대상이어야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외가에 가면 집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현관 앞에는 장화처럼 생긴 긴 가죽 부츠가 한 켤레 놓여 있었습니다. 외삼촌이 경찰이었거든요. 외삼촌이 쓰던 방에 들어가면 책상 위에는 흰색 헬맷과 검정 선글라스가 올려 있었습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외삼촌 모습이 꽤 멋있게 보였던 기억입니다.

경찰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 그리고 안전을 책임진다고 해서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각종 비리 의혹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물론, 대한민국 경찰이 비리 집단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어느 조직이나 집단에서건 ‘미꾸라지’는 있는 법이니까요.

검찰이라고 다를까요.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는 그들 조직도 자신들이 가진 권한을 남용하고, 거대 권력에 휘둘리며 국민 공분을 산 적이 한두 번 아니잖아요.

검사는 경찰처럼 경찰차나 오토바이를 타거나, 호루라기를 불거나, 헬맷을 쓰고 다니지 않습니다. 검사 복을 입지 않으면 검사인 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검사는 또 경찰보다 힘이 셉니다. 경찰이 한 수사를 놓고 재판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기소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던 작던 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있어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피의자를 법정에 세울 수 없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권을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최근 ‘버닝썬’ 사건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강남의 한 클럽에서 벌어진 각종 의혹이 경찰과 유착관계에 있다는 것 때문인데요. 국민들은 이제 검찰도, 경찰도 못 믿겠다는 겁니다.

승리와 정준영이라는 연예인의 ‘불장난’에서 꺼질 줄 알았던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고(故) 장자연 씨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까지 소환했으니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 해결에 검경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했습니다. 검찰과 경찰의 충성 경쟁과 동시에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정치권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습니다. 여당은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과 봐주기 수사 논란을 특검(특별검사)이나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종 종착지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로 보입니다.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 흠집 내기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좌파 망나니 칼춤 기구’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리고 내놓은 카드가 ‘황운하 특검’입니다.

한국당은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이 울산지방청장 재직 시절 ‘공작수사’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로 인해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자기당 소속이던 김기현 울산시장이 낙선했다며 특검을 벼르고 있습니다. 김학의 특검에 황운하 특검으로 맞불을 놓는 격입니다.

금강 보 해체 반대 목소리를 높이던 충청권도 새로운 먹잇감을 본 듯 달려들었습니다. 한국당 충청권 의원들은 지난 20일 정례 회동에서 황운하 특검법 발의와 파면 요구를 주도하기로 했습니다. 한국당 대전시당과 울산시당도 이튿날(21일) 대전지방경찰청 앞에서 황 청장 사퇴와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으로 쿵짝을 맞췄습니다.

황 청장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원래부터 몹시 바라던 바임)의 심정”이라며 ‘어디 한번 해보자’는 입장입니다. 그는 2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자신을 향한 정치공세에 “한국당이 (검경)수사권조정 반대 명분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의로운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드러냈습니다. 국민은 늘 불안하고, 선거는 다가오나 봅니다.

‘정의와 인권의 수호자’ 검찰, ‘민중의 지팡이’ 경찰, ‘민의의 전당’ 국회. 모두 국민의 심부름꾼들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보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고 해서야 쓰겠습니까. 무뎌진 칼과 부러진 지팡이, 구태 정치로 국민을 섬길 순 없는 노릇입니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을 보는 것만큼 고역도 없습니다.

이 시간에도 법정에서 카랑카랑하게 공소문을 읽고 있을 대한민국 검사, 교통딱지부터 잠복근무까지 열심인 대한민국 경찰, 민심을 살피며 법다운 법을 만들고 있을 국회. 이들 모두 개혁의 대상인 아닌, 국민의 박수와 칭찬을 받는 날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저도 오늘은 외삼촌께 안부 전화 한통 드려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