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는 구소련체제를 동경하지도 그렇다고 오늘의 러시아를 바람직한 국가상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 나름의 이상 국가상을 수립한 사람처럼 오늘의 러시아를 예리하게 진단했다.

“2차 대전 후 상당기간 소련은 구미 선진국들을 능가하는 경제적인 성장으로 체제안정과 국력신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획 경제체제는 곧이어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지요. 첨단 산업사회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고삐를 놓쳐 전반적인 침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역시 이런 국면을 만드는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시장성을 가미한 개혁을 단행했지만 갑자기 봇물을 터놓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시켰고 사유화와 시장화가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러시아를 몰아갔지요.”

그는 세미나에 나온 학자처럼 데이터를 들이대며 꼼꼼하게 러시아 사회를 진단했다. 마피아의 보스라기보다 정세 전문가에 가까워 보였다. 세련된 말투와 다듬어진 정치적 용어구사력은 연설가를 연상시켰다. 싸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짓을 너무나 세심하게 관찰하며 말을 잇고 있었기 때문에 좌중에 있는 사람 누구도 그의 눈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92년부터 도입한 급진적인 경제정책은 가격의 자유화로 이어졌고 나아가 고율의 인플레와 전반적인 생산 저하를 낳았지요. 결국에는 대공항의 늪에 러시아를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

실제 국내 총생산이 -11%, 생산 국민소득은 -14.5%, 공업생산고는 -16.5%성장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어디 그 뿐입니까. 소비재 생산은-11%, 국민 소득은-14.5%를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고율 인플레는 92년 한해만 26%에 달했으니.....”

그는 혀끝은 찼다.

오랜 야당생활로 이골이 난 사람같이 대정부 비판을 신랄하게 했다. 그는 내가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가운데 가장 철저히 그리고도 예리하게 사회정세를 파헤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가 이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짭짤한 연어고기를 씹으며 되물었다.

그것은 경험 부족이지요. 시장 경제체제에 대한 경험부재. 지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뒤 근 70년간 장사하는 방법을 잊고 살았거든요. 이 때문에 개혁정책은 시장 경제체제로 가면서도, 정책입안자들이나 경제주체들은 시장 경제체제를 낯설게 느꼈으니 개혁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꼴레뜨네프는 연신 훈제 연어고기와 철갑상어 알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알렉세이의 말에 적극 동감하듯 버릇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으로 미루어 그는 실무진의 책임자일 뿐 정책적인 결정은 알렉세이를 따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알렉세이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강인한 행동대장 쯤으로 보였다.

우리는 한동안 이런 얘기를 나누며 6월의 햇살을 만끽했다.

따사로운 날씨였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눈부셨지만 날카로운 햇살에 약간의 따가움을 느낄 뿐이었다. 이런 햇살의 따가움도 숲에서 파란 바람이 불면 이내 가시곤 했다.

호숫가에 선 나무들이 바람을 피하느라 일렁였고 자작나무 숲 너머로 멀리보이는 구릉과 숲들은 벨벳을 깔아놓은 듯 부드럽게 보였다. 여기 저기 흩어진 따차의 양철지붕이 유리 조각같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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