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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대만원주민박물관
[107] 대만원주민박물관
  • 정승열
  • 승인 2019.03.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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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대만국립고궁박물관 정문에서 길 건너편에 순익대만원주민박물관(順益臺灣原住民博物館)이 있다. 대만원주민의 생활 모습과 자료들을 전시하는 원주민박물관은 타이베이 번화가인 2.28.평화기념공원 구내에도 있지만, 순익대만원주민박물관은 임청부(林淸富)라는 개인이 1994년 6월에 설립한 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이다.

사실 대륙의 중국은 한족(漢族) 이외에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고, 대만정부 도 원주민과 대륙에서 건너온 한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다. 그 결과 국부기념관, 고궁박물관, 중정기념당 등 한족의 기념물에는 흰색 패루를, 북경의 이화원 등 만주족의 경우에는 붉은 색 패루를 세우지만, 대만원주민들은 회색 사다리꼴 모양에 건물의 기둥에도 원주민의 토템을 새긴 모습이다(중국에 대하여는 2018.12.17. 대만여행 참조).

대만에는 5만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으나 원주민인 말레이-폴리네시아계 16부족은 해안가와 고산지대에 흩어져 살았다. 16부족은 섬 북부와 서부 평야지대에 파제흐(巴宰族, Pazeh. 巴則海族이라고도 함), 케타가란(凱達格蘭族, Ketagalan), 쿠론(龟仑族, Kulon), 타오카스(道卡斯族, Taokas),파포라(拍瀑拉, Papora),바브자(巴布薩族, Babuza. 貓霧捒族이라고도 함), 호아냐(洪雅族, Hoanya), 시라야(西拉雅族, Siraya)와 마카타오(馬卡道族, Makatao)족이 살고, 고산지대에는 아타얄(泰雅族, Atayal), 사이시얏(賽夏族,Saisiyat), 브눈(布農族, Bunun), 츠우(鄒族, Tsou), 파이완(排灣族, Paiwan)족이 살았다.

원주민들은 부족 간에 물물교환을 하거나 싸움, 결혼 등의 교류를 했으며, 일부는 식인종 풍습도 가졌다. 그러나 대만이 세계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90년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발견하여 ‘아름다운 섬’이라는 에스파냐 이름 포모사((Ilha Formosa)’로 서양에 알려진 이후부터다. 그 후 유럽 각국이 잇달아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명(明)에게 통상을 요구했지만 불응하자, 1624년 네덜란드가 대만의 남부 타이난(台南)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1626년에는 에스파냐도 대만의 북부를 점령했지만, 1642년 네덜란드가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낸 뒤 대만을 독차지하더니,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식민통치를 했다. 한편, 대만을 일본 나가사키를 왕래하는 무역거점으로 삼았는데, 이 무렵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상선이 난파하여 조선 효종 때 박연과 하멜 등이 제주도에 표류하기도 했다.

1. 원주민박물관 야외전시물
1. 원주민박물관 야외전시물

1-2. 16부족 입석
1-2. 16부족 입석

2. 대만원주민박물관
2. 대만원주민박물관

2-1. 박물관 입구
2-1. 박물관 입구

1644년 청 태종이 대륙을 지배하던 명을 멸망시키자, 정성공(鄭成功)이 명조 복위운동을 전개하다가 대만으로 건너와서 1682년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통치했지만, 이내 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들어 애로호사건(Arrow; 2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청과 1858년 톈진조약을 맺고, 대만의 단수이(淡水)에 영사관을 설치했다(2018.12.24. 단수이 참조). 

그러나 2차 대전을 일으키고 대만을 점령한 일제강점기에 원주민들은 대만 북부와 서부 평야지대에 사는 고산족(高山族 또는 生蕃; Formosans, 까오산주)과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평포족(平埔族: 핑푸주)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쫓겨 오면서 대만은 원주민과 명~청대부터 건너온 대만인(臺灣省籍者), 국민당정권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갈라져 필연적으로 민족적 갈등을 초래하게 되었다.

국민당정부는 대만을 오랫동안 식민통치한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일본처럼 마치 점령군으로 군림하여 대만인들의 큰 반발을 샀는데 1947년 2월 28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선포한 계엄령은 40년이 지난 1987년 7월에야 해제되었으니 심각한 민족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2019.1.7. 2.28 평화기념공원 참조)

이후 대만정부의 꾸준한 노력으로 원주민 중 핑푸주 대부분이 한족과 동화되어서 오늘날 원주민이라고 하면, 까오산주만을 의미한다. 현재 대만 주민 98%가 한족이고, 원주민은 2%인 약50만 명 정도이지만, 원주민 까오산주가 섬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대만정부는 2.28 사태를 겪은 뒤 원주민의 독자성을 인정하여 그들의 적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3. 1층 전시실
3. 1층 전시실

3-1. 원주민 16부족
3-1. 원주민 16부족

4. 2층 전시물
4. 2층 전시물

4-1. 원주민 토템상징물
4-1. 원주민 토템상징물

5. 의복
5. 의복

5-1.원주민의 배
5-1.원주민의 배

대만원주민박물관의 입장료는 150대만달러(한화 6,000원)이고, 국립고궁박물관과 통용되는 입장권은 400대만달러(한화 16,000원)이다. 국립고궁박물관과 사설 원주민박물관이 통용되는 입장권을 인정한 것은 아마도 국민당정부가 한족과 원주민간의 갈등으로 야기된 2.28.사건을 의식하여 중국 본토의 유물과 함께 원주민의 유물도 똑같은 대만인의 유산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정한 것 같다.

국립고궁박물관 옆에 조성된 야외전시관은 거저 관람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16부족의 토템과 특징을 새긴 돌비석 등이 있다. 길 건너편의 박물관에 들어서면 각층마다 약20평 정도의 아담한 전시실이 있다. 1층의 대만 지도에는 한족이 대륙에서 건너오기 전에 섬을 지배했던 원주민 16부족의 영역을 표시하고, 벽에는 각 원주민들의 특징과 의상 등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원주민 분포와 각 부족의 특징에 대해 개괄적인 소개를 하고, 관람객은 로비의 디지털 지도와 터치스크린을 통하여 각 부족의 특색, 촌락의 분포현황, 행정구역과 산맥하천 등 지리환경을 알아 볼 수 있다.

계단을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가면 각 부족의 생활과 기구 등을 보여주는데,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는 전시물 중 총기류는 대만에 처음 기착한 포르투갈 상인들과 교역을 하면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서양인들로부터 가톨릭도 일부 전래되어서 중부지방에서는 가톨릭이 우세하고, 북부는 불교가 우세하다고 한다.

3층은 각 부족의 전통의상과 문화와 원주민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워 왔던 투쟁에 관한 자료도 전시하고 있어 원주민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지하층에는 원주민의 역사 상영관으로서 매시 정각에 약15분가량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원주민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문득 남북분단 70년 동안 이질화된 남북한, 그리고 전 국민의 4%에 이르는 다문화가정 200만 시대에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하는 일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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