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양승조 충남지사. 자료사진.
양승조 충남지사. 자료사진.

금강 공주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부분 해체’다. 이 보의 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반대하고 있다. 이해 당사자인 농민들과 정부의 의견이 엇갈려 있는 만큼 지방의 대표인 충남지사와 공주시장이 이에 대한 입장을 보다 명확히해서 대처해야 하는 문제다. 도민과 정부가 갈등을 빚는 문제이므로 특히 충남지사의 입장이 중요하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얼마 전 “정부 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농업용수 부족 등 우려되는 문제에 대해 ‘선대책 후해체’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대책 후해체’라는 조건을 달았으나 ‘해체 찬성’이 기본 입장이다. 양편에 한 발씩을 디딘 모양새다. 도지사로서 정부 입장을 거스르기 어렵고 도민인 농민들의 입장을 외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중간한 입장’은 ‘충남도민을 대표하는 도지사의 기본 입장’으로는 잘못이라고 본다.

도지사는 중앙 파견 고관(高官) 아닌 도민들이 뽑은 도민의 대표

도지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중앙정부 방침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서도 도민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양쪽의 의견이 상충될 때, 도지사는 기본적으로 도민의 입장을 우선해야 한다. 도지사라는 자리는 중앙정부가 내려 보낸 고위 관리(官吏)가 아니라 주민들이 선출한 ‘주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도지사는 도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금강 보 철거 문제는 국가 하천의 관리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충남도가 아니라 국가(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한 도지사의 기본 입장’은 도민들의 의견에서 나와야 한다. 도민들의 의견에 심각한 위험성이나 문제점이 있는 게 아니면 도지사는 도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따라서 양 지사는 해당 지역 농민들의 의견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가 해체되면 정말 피해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 심각한지 등을 알아야 한다. 농민 중에는 해체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농민의 찬반 비율도 파악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 찬반 입장의 전문가들까지 만나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충남도가 이런 조사를 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언론 보도만 믿지 말고 도지사 스스로가 실태 조사를 해야 된다. 

무슨 문제든 의견이 갈리고 갈등이 커질수록 견강부회와 억지논리가 등장하고 믿기 어려운 주장과 수치들이 난무한다. 4대강 문제는 지금 그런 상황에 빠져 있다. 보존과 해체 어느 쪽 주장에도 온전한 신뢰를 보내지 않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4대강 문제는 본래는 ‘환경 문제’였지만 정치 공방이 가열되면서 ‘환경’보다는 ‘정치’문제가 되어 있다.

‘정치’는 다른 중요한 것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4대강 댐 문제는 ‘댐의 본래 기능’과 ‘환경 문제’를 먼저 살펴야 한다. 정부와 환경단체에선 환경문제로 먼저 접근하고 있고 있으나, 농민들은 물의 이용 측면에서 먼저 볼 수밖에 없다. 대다수 국민들도 이 둘 중 어느 한쪽이거나 그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생각이 옳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존재할 경우 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또 중대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집단의 입장이 가장 중시되어야 마땅하다. 공주보 문제에선 그 사람들이 농민이다. 정부와 환경단체 심지어 도지사를 포함한 모든 기관단체들은 농민만큼 직접적 이해(利害)는 없다. 기껏해야 ‘정책적 승리’거나 ‘자기 소신의 실현’에 불과하다. 농민들은 일상과 삶과 자체가 달린 절실한 문제다. 

만약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이 썩어 농사까지 망칠 정도인 데도 농민들의 전문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무턱대고 철거에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농민들 의견만 우선시할 수는 없다. 농민들이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수질 문제에 관한 농민들의 지식과 정보가 전문가에 미칠 수는 없겠지만 정부가 무시해도 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든 도지사든 농민들의 입장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중간 입장’은 ‘民 아닌 權의 편’이라는 뜻

농민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반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제 철거에 나선다면 농민들에겐 명분없는 폭력이 된다. 이런 사태로 번질 경우 도지사는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양 지사는 중앙의 권력을 좇을지 고향의 도민을 따를지 결정해야 한다. 어중간한 입장은 중간이 아니라, ‘권력의 편’임을 뜻하는 다른 말일 뿐이다. 도지사가 강제철거현장에서 농민들과 같은 편에 서서 몸소 막고 나서지 않는다면 ‘정치인 양승조’는 도민을 버리고 권력을 좇는 도지사가 되고 만다.

정치인들이 이런 갈림길에 서면 열에 아홉은 국민을 버리고 권력을 좇는다. 권력은 확실해 보이고 국민은 불확실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삼이사의 정치인들은 다 그 길을 간다. 지금 양 지사 앞에는 그렇지 않은 길이 하나 더 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이므로 위험하고 두려운 길이다. 공주보 문제는 관련 농민들에게도 중대한 문제지만 ‘정치인 양승조’에겐 더욱 중대한 문제다. 국회의원 4선의 중진 출신이지만 양 지사에겐  아직 이런 ‘시험’이 없었다.

이번 시험의 선택지는 두 글자뿐이다. ‘민(民)’이냐 ‘권(權)’이냐다. 도민을 따르느냐 권력을 좇느냐다. 권을 버리고 민을 따른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을 버리고 권을 좇아 성공한 정치인은 고금에 못 봤다. 종종 이런 ‘선택지’를 일부러 만들어 ‘자기정치 쇼’를 하는 정치인들도 없지는 않다. 양 지사는 그럴 사람은 아니고 지금 주어진 ‘民-權의 선택지’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므로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다. 

양 지사의 선택에 따라 자신은 물론 공주보의 운명과 농민들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 양 지사가 ‘진심으로 힘을 다해’ 농민의 편에 선다면 아무리 정부가 나선다 해도 공주보 철거는 어렵다고 본다. 도지사가 모른 체 하거나 형식적 반대에 그쳐 民을 버리고 權을 따른다면 공주보와 농민들의 삶은 알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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