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62] “죽어봐야 저승 맛 알겠느냐” 덤빌 의원 있나

지난 6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지 당정간담회. 자료사진.
지난 6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시-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지 당정간담회. 자료사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조경태. 그가 한국당 옷을 입은 건 3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지난 2.27전당대회에서 압도적 1위로 최고위원에 올랐습니다. 그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 후보로 험지로 불린 부산(사하을)에 출마해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내리 3선을 했습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문재인 당시 대표를 향해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느냐”며 독설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6년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겨 4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 당대표에 선출된 황교안 대표에 당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친노(친 노무현)의 저격수에서 친황(친 황교안)의 저격수로 돌아선 셈이지요.

서두에 조경태 의원 정치 이력을 설명한 건, 충청권에도 그와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집권 3년차 개각을 단행했습니다. 장관 18명 중 7명을 바꿨는데요. 충청 출신 인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충청 소외론과 홀대론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충청권 언론은 지역 안배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충청권 인사를 배제한 개각을 대통령과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요?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잖아요. 그걸 갖고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습니다.

제 생각엔 가장 큰 비난을 받을 곳은 지역 정치권입니다. 그 중에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지요. 10여년 전만해도 충청권은 ‘보수의 텃밭’으로 불렸습니다. 그 당시는 지역 정당이 존재했으니까요. 자민련에서 자유선진당으로 이어졌던 지역 정치지형에 민주당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였습니다.

자유선진당이 2012년 5월 개칭한 선진통일당이 그해 10월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지역 정당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4년 뒤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 정치 구도를 뒤바꾸었습니다.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 승리를 시작으로,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도 압승했습니다.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원외 인사들이 하나 둘 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했고, 충청권 4개 시‧도 광역단체장 모두 민주당 소속입니다.

하지만 장‧차관 인사에서 충청도 출신이 기용되지 못해도 여전히 ‘찍’ 소리 못합니다. 청와대 ‘왕 실장’이라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충북 청주 출신이고, 집권당 대표는 충남 청양 출신에 세종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개각은 보각(補閣) 수준 차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호남 패권주의에 지역 인재들이 크지 못했고, 그래서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번 개각은 문재인 정부 들어 단행한 개각 가운데 최대 폭이었습니다.

또 이번 개각에서는 정치인 출신보다 교수 등 전문가를 중용한 점을 보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십 개 넘는 충청권 대학에 장관할 만한 교수가 한명도 없을까요.

어떤 여당 국회의원은 “쓸 만한 교수가 있으면 추천 좀 해 달라”고 합니다. 시‧도지사나 국회의원은 선거 때 지역대학 교수들을 불러다 자문그룹을 꾸립니다. 그런데 중앙 부처 수장으로 천거할만한 사람이 없다면, 그건 ‘자기부정’일 따름입니다.

중앙부처 인사에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충청권에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지역 인재를 안 쓴다고는 난리입니다. 지역 인재 의무 채용을 담은 혁신도시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최근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발표한 충청권 정당 지지율에서 한국당이 민주당을 앞질렀습니다. 민주당은 “여론은 언제 어떻게든 바뀔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모양입니다. 1년 뒤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민주당 20년 집권”을 외치던 이해찬 대표. 그는 최근 “100년 집권”으로 근수를 올렸습니다. 100년 집권을 하려면 내년 총선부터 이겨야 합니다. 과연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00년 집권의 토대를 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당대표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 찍혀 공천을 못 받을까 겁내는 여당 의원들이 있는 한 ‘100년 집권론’은 소설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지역민들이 의원 배지를 달아준 건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역민이 외면 받거나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이유였습니다.

충청권은 그동안 집권은 못했어도 ‘캐스팅보트’는 쥐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을 잡고서도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집권당으로서 존재 가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이드 메뉴’로 전락할 따름입니다. 공천 못 받고 정치생명이 끊기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합니다.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느냐”던 조경태 의원처럼요.

그런 결기 없이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지역민들에게 “한 표 줍쇼”하고 손 내밀 순 없는 노릇입니다. 지역 언론 역시 청와대와 정부 탓만 하며 ‘홀대론’만 제기할 게 아닙니다.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 못하는 지역 여당을 꾸짖고 충청도 자존심을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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