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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131]
탈북자 [131]
  • 이광희
  • 승인 2019.03.1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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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급히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따냐는 아무데도 없었다. 낮선 중년 부인만이 다른 방문 앞에 서서 열쇠를 찾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곳에서 따냐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낡은 계단을 내려섰다.

벌써 밖에는 어둠이 조용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하루의 긴 여로에 지친 햇살이 땅거미와 함께 대지에 둥지를 틀었다. 어둠의 싹들이 구석구석에서 돋아나고 있었다. 늙은 나무의 난마와 같이 얽힌 뿌리들이 흙 속으로 파고들듯이 어둠은 그렇게 뿌리를 낯선 땅에 내리고 짙어가고 있었다.

야로슬라브의 승용차는 잿빛 어둠이 두텁게 내려앉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향했다. 도로에는 매캐한 매연 한 꺼풀이 거미줄같이 낮게 걸려있었다.

우리가 막 도심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다다랐을 때였다. 번호를 알 수 없는 승용차 한 대가 브레이크 파열음을 내며 갑자기 야로슬라브의 승용차를 뒤쫓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힐끗 뒤쫓는 차를 봤다. 그 승용차는 눈부신 헤드라이트를 켜고 따라오고 있어 정확히 볼 수가 없었다. 검게 보이는 물체만이 플래시를 들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야로슬라브는 뒤차의 추적이 심상찮다면서 더욱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승용차의 엔진 소리가 윙윙거리며 속도 게이지가 순식간에 80킬로미터 이상으로 치솟았다.

화살같이 내달리는 승용차는 시내버스를 추월한 뒤 또 다른 승용차를 앞질렀다. 뒤를 따라오는 승용차도 우리를 놓칠세라 있는 힘을 다해 추격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심 깊이 파고들었을 때도 그 차는 여전히 우리가 탄 승용차를 뒤쫓았다. 중앙선을 넘나들면서 우리만큼이나 필사적으로 뒤따랐다. 우리를 놓치면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이빨을 깨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려드는 도밸만 같이.

저들이 누굴까요?”

중국계 아이들일 겁니다.”

중국계?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알고 따라오는 걸까요?”

내 차를 본 모양이지요. 지금 어디쯤 따라오고 있나요?”

“50여 미터쯤 뒤에.”

단단히 잡으세요. 속력을 더 내야겠습니다.”

야로슬라브는 미친 듯이 차를 몰아 도심의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차의 속력게이지가 140킬로미터를 넘어섰다. 아찔한 순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났다. 그들은 야로슬라브가 속력을 더하면 잠시 뒤쳐지는 듯하다 곧바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붙었다.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이 계속됐다. 앞서가던 차량들이 순식간에 뒤쳐졌고 마주 오던 차량들은 돌발적인 사태를 피하느라 경적을 울리며 비틀거렸다.

야로슬라브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급선회를 한 뒤 좁은 골목길로 내달렸다. 그들 역시 파열음을 내며 급선회를 한 다음 우리를 바짝 추격했다.

끈질긴 놈들이군.”

야로슬라브는 중얼거리며 길옆에 서 있던 쓰레기통을 밀어붙인 다음 곧바로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외줄 타는 곡예사같이 아찔한 순간순간을 가까스로 넘기며 우리차를 더욱 바짝 추격했다.

뒤쫓던 승용차가 우리가 탄 승용차의 꽁무니를 한 차례 들이받고는 이내 브레이크 파열음을 토했다. 그들의 승용차가 손을 내밀면 붙잡힐 듯이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때였다. 한 사내가 권총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20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따라 오고 있어 총구가 빤히 보였다. 만약 그가 우리차를 향해 사격을 한다면 아무리 둔한 총 솜씨로도 유리창을 날려버릴 것이고 우리 둘 중 한 사람의 머리에 총상을 입힐 것 같았다.

그 때 세 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잇따라 들렸다.

순간 나는 승용차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안전벨트를 더욱 조였다. 눈을 감고 총탄이 빗겨 가기만을 기대했다. 야로슬라브 역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골목길을 최고의 속력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들이 쏜 총탄은 내 염원 탓인지 혹은 그 사내의 총 솜씨 탓인지 우리가 탄 승용차의 차창 하나도 뚫지 못한 채 허공으로 날아갔다.

야로슬라브도 연신 손에 묻어오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낮추고 운전대를 흔들었다. 그는 속력을 더 할수록 신이 나는 모습이었다. 어깨를 주척 거리며 백미러를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했고 때로 급정거를 한 뒤 더욱 좁은 골목길로 차를 몰기도 했다.

얼마의 추격전이 계속 된 뒤에야 그들은 차를 돌려 좁다란 골목길로 사라졌다.

따돌렸어요. 결국 못 따라 오는군요. 새끼들. 여기서 나를 따라 잡으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나는 그제야 고개를 삐죽이 내밀었다.

정말이군요.”

속력을 늦춘 야로슬라브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한참동안 더 지난 뒤에야 널찍하지만 낯선 포도로 차를 몰았다. 온 몸에 땀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는 그제야 긴장을 늦추는 듯 담배를 빼물었다. 나도 흰 연기를 토하며 나른함에 몸을 내맡겼다.

앞으로는 더욱 주의를 해야 합니다. 중국계들이 저렇게 장 기자님을 쫒는데 어떻게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어요. 부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 기자님의 안전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놈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보복을 해올지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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