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규 교수의 과학으로 읽는 한의학]

송창규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내과면역센터 교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과학 잡지인 네이처(Nature)지의 2018년 1월 3일자에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 CFS) 연구의 새로운 시동”이라는 기사가 실렸었다.

이 기사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시절 수영을 즐길 만큼 건강하였던 엘리자베스 알렌(Elizabeth Allen)이라는 34세의 변호사가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질병으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동안 원인 규명이나 치료법 개발에 대한 연구지원 등에서 소외되었다가, 최근에 미국정부 주도로 새로운 다양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특집기사는 네이처지의 독자들이 뽑은 2018년도에 10대 기사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만성피로증후군”에 대한 질병 극복을 위하여 정부가 발 벗고 나서겠다니 환자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소식이다. 변화의 출발은 미국의 정부의 의뢰를 받은 의학연구소 (Institute of Medicine: IOM)가 2015년도에 국가적인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부터이다.

이러한 소식이 이슈가 되는 몇 가지 사연들이 있다. 첫째로 그동안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은 정당한 환자대우를 못 받아왔다. 일생동안 피로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피로”는 병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흔하고, 특히 질병 이름에 “피로”라는 단어가 한 몫을 하였다.

본 질병이 현재의 혈액이나 방사선 검사 등에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의료기관이나 직장,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도 정신적인 의지의 문제 정도로 취급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IOM에서는 “피로 (fatigue)"라는 단어를 뺀 Systemic Exertion Intolerance Disease (SEID: 전신적 활동불능병) 이라는 새로운 병명으로 호칭할 것을 제안하였다.

다른 하나는 아직 본 질환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간혹은 치료기관에서 조차 “만성피로증후군”을 “만성피로”와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왔다. “만성피로증후군”은 “만성피로”와 전혀 다른 질병임에도 말이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생산연령층(약 20대~50대)에서 주로 발생하여, 본 질병을 가진 환자의 약 30%는 밖에 활동이 불가능한 심각한 질병이다.

아무리 쉬어도 개선되지 않는 극심한 피로로 직장생활, 학습활동, 심지어 집안일도 현저히 제한을 받게 된다. 단순한 “만성피로”는 대게 아침에 수면을 하고 나면 좀 나아졌다가 오후에 일을 하면 피로가 누적된다.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기분이 호전되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만성피로증후군”은 아침에 일어나도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과 같아서 상쾌함을 전혀 못 느끼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가벼운 활동 후에도 심한 피로감으로 침대에 누워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기억력이나 집중력과 같은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의학연구소(IOM)가 2015에 발표한 “만성피로증후군”을 진단하는 기준은 아래와 같은데, 이전의 진단기준 보다 훨씬 더 질병의 특성을 반영하였다고 여겨진다.

우측 3개 증상은 필수적임

1. 휴식으로 개선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할 만한 원인이 없는 심한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이로 인하여 직장, 학교 혹은 일상생활을 현저히 방해받고 있음.

2.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활동 후에 증상이 더욱 심해짐.

3. 아침에 기상 후에 상쾌함을 못 느낌.

우측 둘 중 1개 호소함

1. 인지활동 (합습이나 기억, 집중 등)이 잘 안됨.

2. 기립성 조절장애 (오랫동안 서있기가 힘들거나 갑자기 일어서면 현기증, 심장 두근거림 증을 느낌).

“만성피로”는 한국 직장인의 약 65% 정도가 호소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렇게 흔한 “만성피로”는 대부분 과로와 스트레스에 기인하고 적절한 휴식과 치료로 대부분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만성피로증후군”은 현재까지 난치성 질환으로 ”복합적 다기관의 신경면역계의 질병상태(complex, multi-system, neuroimmunologic disease)라고 요약된다.

“만성피로”와 특이적으로 구분되는 개관적인 차이점 중의 하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라는 코르티졸의 혈중 농도이다. 즉, 일반적으로 “만성피로” 환자는 혈중의 코르티졸 농도가 높아져 있지만, “만성피로증후군”에서는 반대로 매우 낮아져있다. 이는 “만성피로증후군”은 일종의 스트레스인 “피로”에 저항하는 힘이 고갈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TGF-beta라는 면역억제물질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혈액 중에서는 매우 높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이는 신체의 면역조절 기능이 고장나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천만 명 정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손실도 자명하며, 일부의 환자들은 점차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어서 5배 이상의 높은 자살률 위험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에서의 “만성피로증후군”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2018년도부터 필자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만성피로증후군 병태맵 및 치료법 개발연구”라는 전문연구그룹을 구성하였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정부의 지원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만성피로증후군”에 대한 바른 이해가 본 질병에 대한 대책과 해결의 첫걸음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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