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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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을 둘러싼 지역을 환태평양 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라고 하는데, 태평양을 가락지처럼 빙 둘러싼 약4만㎞에 이르는 환태평양조산대에는 지진과 화산 활동이 활발해서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도 말한다.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하는 섬나라 대만 역시 일본열도에 못지않게 지진과 화산이 빈번한데 반면에 뜨거운 온천이 많이 분출한다. 대만의 온천수는 우리나라와 달리 온천의 수질도 다양하고 매우 뜨거워서 냉천, 열천, 탁천, 해저 온천 등 약 120여 곳의 온천이 개발되어 있다.

그중 타이베이에서 가장 가까운 베이터우(北投) 온천지대는 일제강점기이던 1911년 온천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 의해서 처음 개발되었는데, 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대만정부에서 ‘베이터우 온천공원’으로 크게 개발되었다.  타이베이에서 베이터우 온천공원까지는 MRT 단수이선(붉은색)을 타고 베이터우역에서 내린 뒤 신베이터우 역으로 가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신베이터우는 대만정부가 교통의 중심지 베이터우역에서 온천공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겨우 한 정거장 거리에 지선열차 노선을 개설한 이른바 관광특구인 셈이다. 신베이터우 역 광장에서 왼쪽 길로 약5분 정도 걸어가면 온천공원인데, 베이터우 온천공원은 온천욕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지형을 최대한 살려서 하늘을 가리는 고목들이 울창하고 오래된 나무들 사이에는 꽃과 나무가 무성한 자연공원이다.

1. 불의 고리
1. 불의 고리
2. 베이터우 노선
2. 베이터우 노선

 베이터우공원은 2003년 대만의 유명한 작가 지미(幾米)의 소설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왼쪽으로 가는 여자(向左走 向右走)’를 영화화한 ’턴 레프트 턴 라이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영화는 특별한 연인을 만나기를 바라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주인공과 싸구려소설을 번역하며 살고 있는 남자가 아름다운 베이터우 공원에서 첫 만남에서 반하여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국내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했지만, 직접 감상하지는 못했다.

 베이터우에 도착하니 온천 수원지 중 하나인 지열곡(地熱谷)에서 흘러나오는 유황온천수가 공원을 관통하면서 풍기는 진한 유황냄새로 코를 막을 정도였다. 국내 내로다 하는 온천이 많지만, 이처럼 진한 유황 혹은 다른 광물 냄새가 풍기는 온천은 인도네시아 이외의 나라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다. 이곳은 약80~100°C의 뜨거운 온천수가 분출되어 주위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자욱한 유황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마치 지옥의 연옥(煉獄) 같다고 해서 ‘지옥곡(地獄谷)’ 혹은 ‘귀호(鬼湖)’라고도 불릴 만큼 유명하다.

그렇지만, 지열곡의 물빛이 매우 맑은 옥색이고 항상 신비로운 연기에 휩싸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에는 대만 8승12경(八勝十二景)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대만보다 몇 곱절 화산지대가 많은 인도네시아 반둥의 화산분출구 주변에서는 온천수에 즉석으로 삶은 달걀을 관광객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뜨거운 온천수에 달걀을 담갔다가 익혀 먹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다.  또 이곳에서 출토되는 라듐 성분이 포함된 돌은 베이터우석(北投石)이라 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만지명이 붙여진 희귀한 광물이기도 하다. 

3. 지열곡 입구
3. 지열곡 입구
3-1. 지열곡
3-1. 지열곡
3-2. 지열곡 유황가스
3-2. 지열곡 유황가스
4. 베이터우도서관
4. 베이터우도서관
4-1. 도서관 내부
4-1. 도서관 내부
4-2. 어린이도서실
4-2. 어린이도서실

도로 반대쪽 온천공원은 울창한 고목이 우거진 숲인데, 숲속에는 마치 통나무집처럼 보이는 타이베이 시립도서관베이터우 분관이 있다. 시립도서관은 대만에서 최초로 지은 목조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지붕에는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서 태양열로 전력을 이용하고, 발코니의 난간도 친환경적으로 꾸며서 도서관에 온 사람들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새소리를 듣고 숲의 공기를 마시며 독서할 수 있도록 꾸몄다.

또 지붕 위에 심은 잔디는 특수 배수 설계로 자연의 수분을 재활용해 물을 주며, 그 물은 화장실에도 사용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서관 내부도 칸막이가 없이 책을 전시하고 누구든지, 언제든지 찾아와서 책을 읽을 수 있게 꾸며서 마치 숲 속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잠시 도서관을 구경하듯 위아래 층을 골고루 살펴보니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많았으며,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신문이나 pc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처럼 숲속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삼림욕도 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모습이 매우 부럽게 생각되었다. 

5. 숲과 매정
5. 숲과 매정
6. 노천온천탕
6. 노천온천탕
6-1. 가족탕
6-1. 가족탕
6-2. 가족탕 내부
6-2. 가족탕 내부

또 온천공원 숲에는 베이터우 온천박물관과 매정(梅庭) 등의 명소도 있다.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 지역에 있는 베이터우 야외온천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는데 우리에겐 약간 어색한 풍경이기도 했다.

야외온천의 입욕료는 1인당 한화 약 1500~2000원에 불과하다. 물론 수영복과 간단한 세면도구를 준비해야 하지만, 수영복이 없으면 대여도 가능하다. 야외온천은 모두 5개의 계단식 탕이 있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온도가 낮다.

공원 주변에는 온천욕을 하거나 온천공원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즐기는 여행객들을 위한 호텔과 온천탕들이 즐비한데 택시로 양명산국립공원을 투어한 뒤 신베이터우에 도착한 우리가족도 온천욕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족은 한 호텔 온천탕을 들어갔는데 남탕과 여탕이 나눠져 있다.

가족탕을 고른 우리가족은 아들과 둘이서 들어간 남탕은 사방이 두 평정도 될까 싶은 비좁은 온천탕이었지만, 우리네 목욕탕처럼 타일로 단장한 것이 아니라 시멘트콘크리트로 단색으로서 빈틈 하나 없는 욕조와 오밀조밀한 앉음 판 등의 구조는 국내 어떤 온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야무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냉천, 온천, 열천 등 세 개의 온천수 꼭지와 향나무로 만든 물통과 바가지 등은 아득한 향수를 불러주기도 했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베이터우 온천공원에서의 시간은 비록 잠깐이었지만, 진정한 슬로시티는 이런 곳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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