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61]한유총 사태, 보다 거세진 제도 개선 요구

자료영상. 출처=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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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 유치원도 개학 연기 명단에 들어있는데 어쩌지?”

지난 휴일(3일) 휴대폰으로 뉴스 검색을 하던 아내가 한 말입니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주도하는 ‘개학 연기 투쟁’에 참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유치원에서 따로 연락이 왔느냐”고 물었더니 “아직”이라고 하더군요.

상황을 좀 지켜보자며 아내를 다독였지만, 저 역시 불안함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유치원에서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정상 개교를 공지했고, 아이는 ‘무사히’ 등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4일) 한유총은 ‘백기투항’을 선언했습니다. 누군가는 “1년 같았던 하루”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내놓은 형사고발과 한유총 강제해산 등 강경카드가 먹힌 셈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보다 ‘성난 학부모’의 분노가 개교 연기를 막은 결정타라고 봅니다. 이번 한유총 사태를 피부로 느끼면서 정치권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유치원 자녀를 둔 대한민국 대다수 학부모들이 그랬을 겁니다.

한유총은 1995년 창립 이후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집단 휴업’내지 ‘폐업’으로 정부에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보육대란을 우려한 정부는 어르고 달래며 국고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립유치원장은 그 돈으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성인용품을 샀습니다. 어떤 원장은 명품가방을 사고, 노래방을 가거나 자신의 외제차 수리에도 썼습니다.

그동안 정치권은 수수방관했습니다. 어쩌면 알고도 모른 체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릅니다. 정치권은 왜 유치원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했을까요? 바로 한유총의 ‘센 입김’ 때문입니다. 강한 조직력과 집단력을 갖춘 이익집단, 거기에 속한 유치원장에 ‘찍히면’ 선거에서 ‘표(票)’를 얻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겁니다.

지난해 10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사립유치원 비리를 터뜨렸습니다. 그는 당시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유치)원에 100명 정도 원아가 있으면 곱하기 2(엄마, 아빠). 이렇게 해서 200명 정도 학부모들한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야죠. 그런 유치원이 저희 지역구에 30개 정도가 있거든요? 그러면 거의 5000명, 6000명에 가까운 아이들 엄마, 학부모들에게 갑을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 여러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박 의원이 내놓은 법안이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입니다. 쉽게 말해 아이들 보육에 쓰라고 준 돈을 원장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쓰지 못하게 투명한 회계를 하자는 겁니다.

한유총은 “(법안을)그대로 수용하면 사립유치원 자율성 유지와 생존이 불가능하다”면서 법안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개학 연기 투쟁’으로 이어졌는데요. 한유총 입장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유아교육에 헌신하겠다는 일념과 철학으로 사비를 들여 건물을 세워 충실히 운영하는 원장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 정당한 시설사용료를 비용에 반영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세제지원 등 합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학부모와 아이들을 볼모로 한 투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부나 유치원이 문 닫으면 어디로 보내야하나 전전긍긍하는 부모 마음을 먼저 헤아렸어야 합니다. 최소한 양식 있는 ‘교육자’라면 말입니다.

교육당국이 한유총 설립 취소 방침을 정하며 개교 연기 사태는 일단락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한유총 저항은 계속될 걸로 보입니다. 한유총은 이번 사태 책임을 여전히 정부와 여당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유총을 자유한국당이 감싸는 통에 유치원 3법은 이제나 저제나입니다. 한국당 교육위 소속 의원들은 지난해 유치원 3법 처리와 관련해 한유총의 쪼개기 후원 의혹이 보도되자 “유치원 관계자 후원금은 확인하는 대로 돌려주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유총’이 사라진다고 사립유치원 문제가 해결될까요? 제2, 제3의 한유총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근본적으로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고 통학차량까지 가능해야 합니다. 사립유치원이 하는 종일반도 운영해 학부모 걱정을 덜고, 만족도를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정치권은 진영과 편향성 논쟁에서 벗어나 ‘을 중의 을’인 아이들과 학부모 편에서 법과 제도 마련에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곱하기 2’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 지 이번에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1년 1개월 뒤 상상 못할 ‘표(票)의 심판’이 현실화될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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