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 35년간의 교수생활 마무리..행복한 인생 시동

이창섭 충남대 교수가 명예퇴직하면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명예교수로 남아 대학원과 학부에서 한 과목씩 강의하면서 새로운 인생 이모작 준비를 시작했다.
이창섭 충남대 교수가 명예퇴직하면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명예교수로 남아 대학원과 학부에서 한 과목씩 강의하면서 새로운 인생 이모작 준비를 시작했다.

무려 35년 동안 교수라는 직함으로 불렸던 이창섭(63). 이제는 교수직을 명퇴했지만 새로운 직함이 생겼다. 바로 명예교수다. 이 교수는 지난 2월 28일 명예퇴직했다. 정년퇴직까지 1년여 남겨뒀지만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35년 4개월이라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제 그는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5일 낮 유성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 교수는 예전보다 핼쑥한 모습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캠퍼스를 떠난다는 허전함 때문에 마음앓이를 해서인지 예전보다 야윈 모습이었다. 그 스스로도 오래전 대학 다닐적 운동할 때보다 몸무게가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힘있고 단호한 말투는 여전했다.

이 교수는 1955년 신탄진에서 태어났다. 5남 2녀 중 다섯째(6남 2녀였지만 형 한명이 어릴적 사망)로 태어나 신탄진초등학교를 입학했다.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신탄진에서 거리가 먼 대전중학교에 입학할 정도였다고. 거리가 먼탓에 신탄진에서 기차를 타고 중학교를 다녔다. 기차를 놓치는 날이면 수십리가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대전중을 졸업하면 대전고등학교로 진학해 서울권 대학으로 올라가는게 일반적인 코스였다. 그도 어쩌면 그걸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살이는 10대 어린나이의 이 교수에게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만든다. 바로 은행원으로의 진로다. 당시만 해도 은행원이 되면 적잖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대전고가 아닌 대전상업고등학교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대전상고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인생에서 큰 전환기를 맞게 되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대전상고 1학년때 수업이 끝나면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빨리 청소를 해야 했다. 기차를 놓치면 또 걸어서 가야 했기에 그는 열심히 청소를 했다고 한다. 마침 그때 빈둥대면서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 같은 반 친구에게 뭐라고 뭐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 "학교 끝나고 보자"였다.

이 교수의 인생을 바꾼 대전상고 시절 모습.
이 교수의 인생을 바꾼 대전상고 시절 모습.

이 교수는 열심히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학교를 나설 무렵 청소 시간에 봤던 친구가 20여명의 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그날 이 교수는 말 한마디 했다가 20여명의 불량 써클 학생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의 기억은 추억이 돼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은행원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날 사건 이후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곧바로 합기도 도장에 등록했다. 처음에는 복수를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그가 체육을 전공하게 한 계기가 된다.

그는 미친듯이 운동했다. 양쪽 발목에 4KG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 체육관까지 2시간을 뛰어다니며 밤 11시까지 정말 열심히 운동을 했다. 매일 줄넘기를 무려 3~5천번씩 했다. 그렇게 열심히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학은 체육을 전공하게 된다. 축구부로 유명했던 대전상고에서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새로 생긴 충남대 체육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단순히 축구를 좋아했던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선수로 뛰었다. 당시는 특기생들이 아니라 축구를 잘하는 학생들을 뽑아 축구부를 꾸렸던 관계로 이 교수는 학생이자 축구선수로 전국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대학원과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서 조교 생활을 하던 무렵 이 교수에게 전환기가 찾아왔다. 운명처럼. 대전상고 1학년때 운동을 시작하게 한 사건이 첫번째였다면 대학원과 군대까지 해결한 1983년은 두번째 전환기였다. 체육학 박사학위가 없는 상황에서 석사 학위와 1년 이상의 교육경력만 있으면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마침 모든 조건에 충족한 그는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도전했고 당당히 교수라는 직함을 받게 된다. 이 교수는 고교 시절 만난 친구, 충남대 체육학과 1기 입학, 그리고 교수가 될 수 있도록 추천해 준 교수들 덕분에 35년 동안 교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며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35년여간의 교수 생활 동안 이 교수는 다양한 직함을 얻게 된다. 충남대 체육교육과 교수라는 직함 이외에 △대전시체육회 사무처장 △한국체육교육학회 회장 △충남대 교육대학원장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조직위원회 대전경기조정관 등 많은 직함이 또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이라는 명함도 있었다. 지난 2014년 4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국내 체육과 관련한 정책과 시설 등을 모두 관할하는 국민체육공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평상시 워낙 축구에 대한 애정이 많다보니 지역을 연고로 한 프로축구단인 대전시티즌 사장 후보로 여러차례 거론돼 왔었다. 실제 사장 임명이 임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국립대 교수가 재단법인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한 외부 기관에 기관장으로 취임할 수 없다는 교육공무원법 규정에 따라 무산됐다.

이 교수는 한때 외도를 한 적도 있다. 2006년말 한나라당 대덕구 당협위원장을 맡은 뒤 18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2위로 낙선하고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벌금형이 선고돼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시련을 맞기도 했다. 체육발전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아픔으로 끝났다. 후회할 법도 하지만 이 교수는 "정치 경험이 폭넓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시기였다"며 "잠시 외도를 한 기간일 수 있지만 그때의 기억이 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힘줘 말했다.

35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친 현재 그는 또 다시 강의실로 간다. 그에게 명퇴한 진짜 이유와 또 다시 강의실로 가는 이유를 연거푸 물었다. 그랬더니 진솔한 그의 답변이 돌아왔다. 1973년 충남대에 입학했고 1977년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무려 40년 이상을 충대에서만 몸담았다. 교수 생활만 따져도 35년이 넘는다. 스스로도 너무 오래 교수를 하다보니 지금쯤 자리를 비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일만을 생각하면서 늘 가족은 뒷전이었다. 명퇴를 결심한 이유가 이 두 가지다. 이미 5년 전 국민체육공단 이사장으로 갈 때부터 명퇴를 결심했다. 그러나 막상 명퇴를 하려니 스스로 마음의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 여행도 떠났다.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속초, 고성까지 걷고 또 걸었다.

혼자만의 여행 결과는 명퇴의 실행이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앞으로 가족들과 함께 여유있는 생활을 해 보고자 정든 직장을 떠났다. 스스로 올해는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자는 의미에서 지갑에 'family first'를 써서 늘 가슴속으로 다짐한다. 올해는 해외로 가족 여행도 구상 중이다. 

이 교수는 교수 생활 중간 중간 외부 활동도 왕성했다. 와중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기도 했었다.
이 교수는 교수 생활 중간 중간 외부 활동도 왕성했다. 와중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되기도 했었다.

오래전부터 작심해 왔던 명퇴였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았던 것 같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체중이 줄어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민 끝에 당분간 수업은 계속하기로 했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대학원과 학부 각 1과목씩만 강의한다. 체력관리를 위해 그동안 쉬었던 골프를 다시 시작했고 걷기 운동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정말 궁금한 걸 물었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랬더니 "내가 풍부하게 삶을 살려면 공익적으로 공헌하는 게 빠지면 안된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주변사람에게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노하우, 지혜 등을 활용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걸 찾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총선 출마냐는 직접적인 질문에 그는 "노"라고 답했다. 그는 "예전에 총선에 출마했던 이유는 정치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갖고 있는 효과를 이용해 체육을 통해 국민에게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어서 도전했던 것일 뿐이었고, 지금은 스스로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강의할 때면 '세상에 공짜는 없고 거저 주어지지도 않지만 거저 날라가는 것도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시공을 떠나 노력한 만큼 보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운이 좋으면서도 공짜로 얻어진 것도 없는 것 같다"고 웃으며 강의실로 향했다.

엄격한 '호랑이 선생님' 이 교수가 인생 이모작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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