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집사람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 있어서.......”

나는 말꼬리를 감추었다. 그녀가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 처음 보는 나에게 기대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었고 그런 친절이 도리어 나에게 경계심을 유발시켰다.

그러세요. 김 선생님일은 정말 안됐습니다. 하지만 잘 해결될 겁니다. 저희 대학에서도 김 선생님을 찾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거든요. 특히 총장님께서 염려하고 계시기 때문에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얇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꼬리를 매끄럽게 이끌어 갔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연신 책상 위의 서류철을 뒤졌다.

전화번호가 여기 있군요.”

그녀는 눌러 쓴 글씨로 전화번호를 메모해 내게 건네주었다.

이곳에 없다면 어디에 있을까요.”

그곳에 없다면 또 다른 대학에 자료를 구하기 위해 갔을 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달려 올라간 치마 끝을 무릎 가까이로 끌어 내리며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뵐 수 없겠습니까? 부총장님은…….”

부총장님도 회의가 있어 출장 가셨습니다. 다음에 전화를 주시고 오시면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메모를 들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나는 따냐를 찾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차를 몰게 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스벤트렌스카야 거리를 가로 질렀다.

오후의 나른함이 도심을 휘감고 있었다. 거리에는 일과를 끝낸 부녀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봇물같이 인도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오전 내도록 비어있던 도심이 쏟아져 나온 부녀자들로 한판 굿을 벌였다.

야로슬라브가 알세니에프 박물관이 있는 거리로 핸들을 막 돌렸을 때였다. 따냐와 흡사한 여성이 길모퉁이에 있는 백화점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따냐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그녀는 따냐의 뒷모습이었다. 늘씬한 키에 핑크빛 스카프를 뒤집어쓰고 잿빛 양장을 맵시 있게 걸친 모습이 누가 봐도 따냐였다.

야로슬라브, 저기 가는 저 아가씨 쪽으로 차를 몰아갈 수 없을까요?”

누구 말하는 거죠?”

저기 갈색 머리에 핑크빛 스카프를 쓴 여자. 백화점 쪽 말이오.”

나는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예 그렇게 해보죠.”

야로슬라브가 주차 공간을 찾으며 그녀 가까이로 차를 몰고 있을 때, 그녀는 여운을 남기며 백화점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차를 세웁시다.”

야로슬라브는 알세니에프 기념박물관이 있는 거리 모퉁이에 차를 세웠다.

길 건너 극동군 사령부가 우거진 아카시아 숲 사이로 우뚝 솟아있었다. 엷은 잿빛의 건물 옥상에는 무선 안테나선들이 어지럽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나는 밀려오는 사람들의 물살을 헤치며 금붕어가 수초사이를 헤엄쳐가듯 역류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백화점 쪽으로 다가갔다.

길모퉁이에 있는 쿤스트 백화점은 4층 규모로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였다. 회청색의 건물은 제정러시아 시대 병정들의 투구모양으로 지붕이 치장되어 있었고 지붕 한가운데는 공장의 굴뚝같이 생긴 돔이 우뚝 솟아있었다. 오랜 풍상을 지내온 탓에 건물 외벽에 붙어 있던 타일들이 군데군데 흉하게 벗겨져 있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문은 유달리 북적거렸다. 색 바랜 스카프를 쓴 중년 부인들이 뚱뚱한 몸매를 뒤뚱거리며 백화점을 드나들었다. 나는 물컹거리는 그들의 사이를 뚫고 백화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야로슬라브는 내 뒤를 바싹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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