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딸에게 일찍 간다'고 했다는데" "이삿날 휴가도 못냈는데..."
한화 대전공장 사고 유가족, 국회 기자회견 통해 진상규명 등 ‘촉구’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 사고 유가족대책위가 2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 사고 유가족대책위가 2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엄마한테 죽도 사다주고 아프지 말라고 했는데..아침 일찍 자는 딸(5)을 두고 출근한 뒤 사고 직전 영상통화로 ‘아빠 오늘 일찍 (집에)간다’고 했다는데..” (故 김승회 씨 어머니)

“태훈이는 사고 당일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려고 했는데, ‘회사 일 때문에 휴가를 못 낸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고 당일 휴가를 못 내고 저와 아내가 이사를 했습니다. 하루도 휴가를 못 낸다는 사업장이 참 너무했습니다.” (故 김태훈 씨 아버지)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 화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유가족이 26일 국회 정론관을 찾아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등이 지지부진하다며 정부와 언론, 정치권의 도움을 호소했다.

앞서 지난 14일 한화 대전공장 70동 추진체 이형공실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김승회 씨(31)와 김태훈 씨(24), 김형준(24)씨 등 3명이 숨졌다. 이 사업장은 지난해 5월에도 유사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엄마의 ‘절규’ "한 달 된 인턴이 왜 거기서 일했는지 꼭 알고 싶다"
유가족 대책위,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재발방지 ‘요구’

한화 사업장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국회 기자회견 전 복도 한쪽에 지친 몸을 서로 가누고 있다.
한화 사업장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국회 기자회견 전 복도 한쪽에 지친 몸을 서로 가누고 있다.

유가족과 유가족대책위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한화 폭발사고 유가족은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 사고 이후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으로 486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특별근로감독에서 ‘근로자 안전·보건 총괄관리가 부재함’이라고 지적됐음에도 또 3명의 노동자, 아니 우리 가족이 죽었다. 가장 큰 이윤을 얻지만 이윤을 위해 모든 ‘을’을 희생시키는 대기업의 파렴치한 행위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이번 사고 원인제공자로 한화를 지목하며 ‘범죄행위’로 규정한 뒤 ‘기업살인법(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와 안전조치 개선에 유가족과 유가족 추천 전문가, 노동자 참여 보장 ▲연이은 사고에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고용노동부 장관과 방위산업청장은 유가족에 사과 ▲1년간 8명 노동자를 죽인 한화 김승연 회장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유족 면담 진행 ▲기업과 정부의 사고 책임자 엄벌 및 재발방지 대책 발표 등을 요구했다.

고(故) 김형준 씨 어머니 최민숙 씨는 “형준이가 한 달 만에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시스템도 없는 회사에서 일하다 기가 막힌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며 “지금 와서 하나하나 알고 보니 정말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일하고 있었다.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힌다”고 절규했다.

최 씨는 “왜 한 달 된 인턴이 거기서 일했는지 꼭 알고 싶다. 한화와 관련 국가기관들은 지난해 그 억울한 죽음도 모자라 올해 다시 3명의 청년을 죽게 만든 책임을 지고 진상을 반드시 밝혀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내 아들이 아니라고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그렇게..”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고(故) 김태훈 씨 아버지 김상국 씨는 ‘아들이 근무환경이나 현장 위험성을 말한 적 없느냐’는 <디트뉴스> 질문에 “평소 집에서 여러 가지 물으면 항상 ‘안전하다’고 했다. 지난 5월 사고 이후에도 걱정이 돼서 물었더니 그때도 ‘안전하다’고 했다. (회사에서 쓴)보안서약 사항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대 의원 “정의당, 기업살인법 제정 총력 기울일 것”
박혜영 노무사 “국회‧정부, 사망사고로도 환경개선 안 되는 이유 답해야”

고(故)김형준 씨 어머니 최민숙 씨가 기자회견에서 유가족 발언을 하고 있다.
고(故)김형준 씨 어머니 최민숙 씨가 기자회견에서 유가족 발언을 하고 있다.
유가족 발언을 듣고 있던 고(故)김승회 씨 어머니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유가족 발언을 듣고 있던 고(故)김승회 씨 어머니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선한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은 “생산현장에서 ‘임금피크제’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고숙련 노동자가 퇴출되고 40~50대 조장이 31살 젊은 조장으로 책임이 떠맡겨 졌고, 만 24살, 채 1달밖에 안된 노동자들이 현장에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대전공장은 작년 5월에도 비슷한 사고로 5명이 사망한 전례가 있다. 실수로 인한 사고라기보다 회사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며 “위협 요인을 계속 방치했을 때 영국이나 독일의 기업살인법에 해당한다. 정의당은 기업살인법을 조속히 제정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왜 작업장에 부적절한 인원이 투입됐는지 아직도 설명되지 않고 있고, 현장에서 사고 당시 CC(폐쇄회로)TV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열흘이 넘는 지금까지 유족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작년 안전점검을 실시했음에도 그 내용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방위원으로서 방위사업청에 감독 책임을 물을 것이다. 회사도 더 이상 진실을 은폐하지 말고, 사고 관련 자료와 사실을 낱낱이 공개하고 유족들에 사과해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시작으로 책임자 처벌은 정치권에서 정의당이 입법을 통해 앞장서겠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국회의 최소한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박혜영 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한국에서는 1년에 2000명 넘는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사망한다. 영국에서 노동자 1명이 죽을 때 한국에서 7~8명이 죽는다.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에 적용하는 게 기업살인법”이라며 “다른 나라 기업들은 작은 사고 하나도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고쳐서 큰 사고를 예방한다. 단지 태어난 나라가 달라서 죽어야 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정부는 왜 사망사고로도 이런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지 제대로 답해야 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언제 죽어갈지 모를 노동자들을 살려야 한다. 돈 벌러 갔다가 죽어서 오는 가족은 더 이상 만들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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