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대전공장 유족 안아줄 국회의원 없나
한화 대전공장 유족 안아줄 국회의원 없나
  • 류재민 기자
  • 승인 2019.02.22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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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의 정치레이더 59] 청년들 죽음 외면한 채 ‘살아있는 표’만 찾을 건가

문재인 대통령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고(故) 김용균 씨 부모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만나 위로를 건네며 안아주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숨진 고(故) 김용균 씨 부모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만나 위로를 건네며 안아주고 있다. 청와대 제공

‘맡은 바 임무에 성실하며 회사의 발전을 위하여 전심전력할 것.’ 한화 대전사업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채용을 위해 회사에 제출한 서약서 첫 문장입니다. 이 노동자는 서약대로 맡은 바 임무에 성실하며 회사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5월 폭발사고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는 이 사고로 동료 5명을 잃었습니다.

지난 14일, 이곳에서 또다시 폭발 화재사고가 났습니다. 20대와 30대 노동자 3명이 숨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정규직이었습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죽음의 정도가 다를 순 없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좋아했을 김 군은 채용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 그런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심정은 오죽할까요.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밤중 혼자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고(故) 김용균(24) 씨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김 씨 사망 이후 국회는 원청업체가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를 제한하는 ‘김용균 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만들었습니다.

김용균 법 시행으로 갑(甲)은 위험한 일을 외부가 아닌 사내 노동자인 을(乙)에게 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할 사람을 ‘정규직’으로 뽑아 작업장에 배치할 텐데요. 현실적으로 ‘청년들’이 험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4차산업특별도시’를 강조하는 대전, 그 지역에 있는 대기업에서 아직도 위험한 일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한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목숨을 담보하는 일을 하는데도 그들이 받은 월급은 많지 않았습니다. 숨진 김 군(24)은 최저임금이 기본급이었고, 월 50% 상여금이 월급여였습니다. 지난달 7일 인턴으로 입사한 또 다른 김 군(24)은 온전한 월급 한번 못 받았겠네요. 이 회사 월급 지급일이 21일이니까요.

숨진 ‘김 군’ 근로계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근무 장소: 생산 2팀(단, 회사 필요에 따라 근무 장소는 변경될 수 있다.)’ 근무 장소는 ‘회사 필요’에 따라 정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숙련된 전문 인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젊고 값싼 노동력’이란 이유로 채용하고, 위험의 작업장에 내몰리는 식이죠. 근무 장소가 위험한 곳이라면 안전관리는 필수입니다. 하지만 한화 대전사업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폭발 사고로 5명이 사망한지 7개월 만에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했으니까요.

한화측은 이들의 고용신분에 대해 '정규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위험의 외주화'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법정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는 인턴과 계약직 청년들을 '대기업 정규직'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지난해 사망사고 당시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특별감사를 했는데요. 노동청 감사 결과는 해당 사업장이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이라고 했습니다. 해당 사업장은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고 전담 팀까지 꾸렸지만 ‘유명무실’했고요. 그 결과 ‘맡은바 임무에 충실했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이번 사고는 회사 측이 안전관리에 소홀했는지,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위반했는지 고용노동부와 경찰 조사를 기다려봐야 합니다. 다만 해당 사업장이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보안시설’이라는 점에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작년과 올해 숨진 사망자 8명은 모두 대전과 충남에 주소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역 정치권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합니다. 사고 진상조사를 촉구하고는 있지만, 논평과 성명 수준입니다. 청년들의 죽음에 두 팔 걷고 나서는 국회의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나라에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제외한 사고 사망자는 1년에 1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주말과 휴일을 포함해서 따져도 하루에 2~3명꼴입니다. 산업재해(산재)를 일상적이고 단순한 ‘사고’로 보기 쉬운 배경입니다.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고 싶은 모양입니다. 공연히 나섰다가 본전이나 뽑으면 다행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귀찮고 피곤한’ 민원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민원은 ‘살아있는 표’니까요.

세월호 참사 때,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과 보수단체는 “교통사고를 가지고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며 단순 사고로 폄하했습니다. 또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하루 전인 12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 회의록을 보면요. 원청 책임이 강화되는 조항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경영계 주장을 대변했습니다. “원청에서 도급을 주기 전에 관리 책임을 일일이 다 현장마다 안전책임자를 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보수 정당 의원들은 수십 년 세월이 흘러도 노동자의 죽음을 여전히 ‘이념의 틀’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노동환경 문제를 정의당 등 소수 진보 정당과 노동계 전유물로 보는 대중들의 인식도 극복할 문제입니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이라도 책임감을 갖고 달려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부분 산재가 발생하면 회사는 노동자 개인책임으로 몰아갑니다. 유족들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 합의하는 게 다반사라고 합니다. 대중들도 처음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공분했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본인과 자신의 일터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특수한 사례로 치부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용균 씨 부모는 열심히 싸워 여론을 모았고, 30년 만에 법을 뜯어고쳤습니다. 지금도 진상규명과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일주일, 한화사업장 사망자 유가족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지역 정치권과 국회의원들이 응답해야 합니다. 사고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법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래야 대전에서 벌어진 ‘김 군들 죽음’이 헛되지 않을 테니까요.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불편해 하는 일은 없는지, 바꾸거나 새롭게 만들어야 할 법은 없는지 살피는 일을 한다’는 건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나옵니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와 청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김용균 씨 부모를 청와대에서 만났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 씨 어머니를 꼭 안아주며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민대책위와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당(黨)도 잘 이행되도록 끝까지 챙겨 달라. 그렇게 해야 용균이가 하늘나라에서 ‘내가 그래도 좀 도움이 됐구나’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한화 대전사업장에서 숨진 김 군들의 부모를 안아줄 국회의원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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