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화벨의 시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수화기를 들었다. 야로슬라브가 보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있었다면 나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여보세요?”

“........”

말이 없었다. 나는 연신 수화기 속을 향해 외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쌔근덕거리는 콧바람 소리만 전선을 타고 들려왔다. 그것은 전선에 묻어있던 전파의 찌꺼기들과 어울려 잡음을 내며 수화기에 고였다.

여보세요 말씀을 하세요.”

수화기는 들려 있었다. 나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보시오. 할 말이 없으면 끊읍시다.”

나는 전화를 끊을 생각에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했다. 순간 수화기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흰 모조지에 거미가 기어가는 소리 같은 것이었다. 여섯 발의 거미가 비틀거리며 한낮의 더위를 피해 그늘로 기어갈 때 발끝에서 묻어나는 엷은 소음이었다. 나는 다시 칼날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수화기를 귀에다 바짝 들이댔다. 귀볼이 눌리는 압박감을 느꼈다.

당신 누구요?”

그때까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전선을 타고 채린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였다.

장 기자님, 저에요. 따냐.”

힘없이 전파를 타고나온 목소리는 따냐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깨진 사금파리같이 떨렸다.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니, 따냐. 그동안 어떻게 된 겁니까?”

다그쳐 물었다. 하지만 말이 없었다. 굳게 입을 다문 채 비음 섞인 흐느낌만 가랑비같이 토하고 있었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그녀의 비음이 수화기에 고였던 전파의 찌꺼기들과 뒤섞여 혼미한 안개처럼 귀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이라도. 그동안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세요?”

그제야 그녀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겁니까. 밑도 끝도 없이……. 지금 어디 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나는 그녀가 채린과 같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 됐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따냐를 납치한 뒤 내게 전화를 걸도록 시켰을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눈을 피해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다만 장 기자님 뵙기가 송구스러워서 전화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드려야겠기에 이렇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꼭 들어 주셔야 합니다.”

내가 꼭 들어 주어야 하다니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얘기를 듣고 화를 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또 제가 죽일 사람이라고 욕을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제 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만나서 얘기하면 안 되는 일입니까?”

예 그냥 듣기만 하세요. 너무 죄송스러워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꼬리를 흐린 다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 기자님 박 인석이란 사람을 아시죠?”

아니 따냐가 어떻게 그 사람을…….”

알고 있어요.”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끝이 치켜 섰다. 무슨 대꾸를 해야 할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따냐가 박 인석을 알다니 우선 이해가 가지 않았고 믿겨지지도 않았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박 인석을 알고 있다고요?”

그녀의 말은 갈수록 냉정하게 이성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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