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부장, 박 부장이 맞아요. 나를 만나자고 했던 그 박 부장이오.”

호흡이 짧아졌다.

“........”

박 부장이 확실합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나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이 박 인석 맞아?”

그는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리고는 흰 휘장으로 그의 얼굴을 가렸다.

오로지 무거운 침묵만이 영안실을 누르고 있었다.

박 부장이 죽었다면 나는 어떻게 채린을 찾을 수 있을까. 그가 내게 한 말이 모두 거짓일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와 나 선배의 차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승용차가 비좁은 포도를 따라 얼마쯤 달렸을 즈음에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박 인석이 아니야. 김 진식이란 놈이야. 함경북도 청진출신이며 현재는 나홋카에 있는 북한상사 주재원으로 등록되어 있어. 김일성대학을 나왔고……. 하지만 그것이 그 놈의 신분을 전부 나타내는 것도 아니야. 서울에서 파견 나와 있는 박 인석은 좀 전에 팩스로 본 그 친구야. 모른다며.”

?”

나는 소름이 돋으며 머리카락이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수차 전화 통화를 하고 서신을 주고받은 그가 북한 상사원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요.”

확인 된 사실이야. 장기자를 만나기로 했던 시점 직전에 피살된 것 같아. 그의 신분이 노출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누군가가 그를 살해했어. 러시아 경찰당국이 조사한 자료에는 없지만 이곳 정보기관의 분석으로는 그 놈이 박 인석이란 이름으로 이곳에서 첩보활동을 벌여왔어. 특히 우리 유학생들의 신분을 파악하고 그들을 포섭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하지만 그가 왜 살해됐는지는 알 수 없지. 북한이나 제3의 인물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는 말을 우물거렸다.

3의 인물?”

모를 일이야. 혼자 추정해 보는 거지. 북한이 그를 제거할 이유가 없잖아. 그의 신분이 노출됐다면 그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거나 송환하면 그만인데.......왜 살해 했을까? 그토록 잔인하게 ......”

그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넘어다 봤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4년의 세월을 사귀어온 그가 박 인석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지만 왜 나를 만나자고 했던 것인지, 정말 채린의 소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따르릉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손목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나는 호텔 창가에 서서 한숨 쉬는 바람소리와 남빛 바다를 말없이 미끄러져 가는 배들, 한가히 닻을 내린 범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하지만 귀찮았다. 박 인석이 4년의 시간을 거짓으로 속여 왔다는 것이 나를 더욱 욕되게 했다. 나는 모든 것이 내게서 멀어져 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그렇게 서 있었다.

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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