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 법무사
정승열 법무사

 

대만의 북쪽 해안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예류(野柳)지질공원, 천등 날리기로 잘 알려진 스펀 (十分), 황금박물관으로 유명한 진꽈스(金瓜石), 그리고 홍등거리로 유명한 지우펀(九份) 등 4곳을 예스진지라고 하며, 대만여행의 필수코스라고도 한다(예스진지에 관해서는 2019.02.11. 예류지질공원 참조).

타이베이에서 스펀까지는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는데, 기차는 타이베이 기차역에서 북회선(北迴線) 철도를 타고 약1시간가량 가다가 루이팡 기차역(瑞芳站)에 핑시선(平溪支線) 열차로 갈아타고 약30분 정도 가면 된다. 핑시선은 1929년 일제강점기에 일본 광산회사가 채굴한 석탄 실어 나르기 위하여 개설한 철도였으나, 오지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전체 노선 약12km 구간에 다화(大華), 스펀, 완구(萬古), 링자오(嶺脚), 핑시, 징퉁(菁桐) 등 6개의 작은 역을 만들자 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은 탄광업이 몰락하자 다시 빈곤해졌다. 그러자 대만정부가 1992년부터 이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해서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단선인 핑시선 철도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또, 타이베이에서 버스는 타이베이 MRT 무자(木柵) 역에서 1076번 버스를 타고 스펀에서 내리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족은 택시투어로 예류지질공원을 둘러본 뒤 스펀으로 향했다. 

1. 스펀역
1. 스펀역

‘스펀’이란 지명은 중국어로 매우 만족한다는 의미의 ‘매우, 아주’라는 뜻이라고 한다. 무성하게 자란 갈대숲은 이 지역 일대가 바닷가임을 말해주는데, 갈대숲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던 택시가 마을입구에서 멈춰섰다. 이것은 비좁은 마을로 택시들이 진입하면, 차량들과 사람들로 거리가 붐비기 때문인 것 같았다.

스펀 옛 거리(十分老街)에도 기찻길이 마을 가운데를 통과하며, 집들이 철로를 따라 길게 줄지어 지어졌다. 그러나 온통 천등을 팔거나 먹거리, 기념품가게들이다.

여행객들은 스펀에 와서 울긋불긋한 수많은 천등 가게에 놀라고, 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천등에 소원을 비는 문구를 작성하며 천등 날리기에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벼운 먹거리를 사먹으면서 여행을 즐긴다.

2. 철도위에서 천등날리는 여행객들
2. 철도위에서 천등날리는 여행객들
3. 기념품가게
3. 기념품가게
3. 천등 가격표
3. 천등 가격표
4. 천등을 사다
4. 천등을 사다

천등은 단색과 여러 색이 있는데, 가격은 대체로 150대만달러에서 200달러정도여서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1대만달라와 원화환율은 약34원).
그런데, 스펀의 모든 가게들이 협정을 맺었는지 천등 가격은 똑같다고 했다.

다만, 각자 얼마나 많은 서비스와 친절을 덤으로 받느냐가 문제인데, 가게에서 천등을 사면 먹물과 붓을 제공한다. 그리고 천등에 각자의 소원을 적고나면 글자를 쓴 먹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또 가족이나 연인들이 천등 날리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주는 서비스까지 해준다.

천등은 먼 옛날 관공서와 멀리 떨어진 이 지역에 도적떼가 많이 출몰했는데, 숲으로 피신한 주민들에게 도적떼가 지나갔으니 안심하고 귀가하라는 의미로 날린 주민들 간에 일종의 신호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천등이 여행객들이 소원을 빌어 하늘로 날려 보내는 놀이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천등의 색깔은 노란 색(금전, 재수),파랑(사업번창), 보라(취업, 학업), 흰(장래희망), 주황(사랑, 연애), 보라(사랑, 연애)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여행객들은 반드시 이런 색깔을 골라서 천등을 날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족도 천등을 하나 사서 아이들이 각자의 소원을 적은 것을 가게 주인이 스마트폰으로 찍어주는 서비스를 했다.

또 스펀의 옛 거리에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는 100년이 넘은 쌀국수집들이 많다. 가격도 싸고 맛도 좋다. 또, 매콤한 닭 날개살 안에 꼬들꼬들한 볶음밥이 들어있는 간식이 인기인데, 우리도 길게 줄을 진 행렬 뒤에 기다리다가 몇 개씩 사들기도 했다.

 

5. 천등 앞에서 기념사진
5. 천등 앞에서 기념사진
6. 천등을 날리다
6. 천등을 날리다
7. 하늘로 올라간 천등
7. 하늘로 올라간 천등
8. 닭날개 안살 가게
8. 닭날개 안살 가게

그러나 핑시선은 처음부터 물길을 따라 개설된 철도이기 때문에 ‘철도’, ‘폭포’, ‘탄광 유적’이 핑시선의 3가지 보물이라고 한다. 보물중 하나인 스펀 폭포는 물줄기가 12m 높이에서 비스듬하면서도 세차게 떨어지면서 햇빛을 받은 물안개가 일곱 빛깔을 무지갯빛을 내면서 마치 꿈속에 있는 듯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또, 스펀 역에서 다화 역까지 가는 철교도 지나고 6개의 터널도 통과하는데, 철도 가까이에 있는 정안 출렁다리(靜安吊橋)는 여행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스펀 만이 아니라 핑시선의 6개 역 전부를 둘러보는 젊은이들도 많다.

타이베이나 루이팡 기차역 창구에서 핑시선 1일권을 구입하면, 하루 동안 핑시선 열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여행객은 어느 역에서 내렸다가 구경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그 다음 역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데, 하루 동안 핑시선 6개역의 모든 곳을 다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택시투어에 나선 우리는 고작 스펀 역에서 천등 날리기와 스펀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닭 날개구이를 사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사실 철로 가까이에 집들이 있어서 기차가 사람이나 집들을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일제 강점기에 철도 호남선 익산역에서 군산까지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부설한 철길 중 군산 입구인 경암동철길이 그랬다. 지금 경암동 철길은 영화촬영지가 되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다

이렇듯 번듯한 건물하나 없는 시골마을인 스펀을 알리기 위해서 후호현(侯孝贤) 감독은 1986년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 연연풍진(戀戀風塵)을 제작했다. 후호현 감독은 대만이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왕의 항복 선언이후 1947년 2월 2.28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4년 동안 산간 오지마을에서 살고 있는 임씨(林氏) 일가를 주인공으로 하여 대만의 격동과 혼란을 그린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로 1989년 제46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10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명감독이다.

신수분(辛树芬), 왕정문(王晶文)이 주연한 영화 연연풍진은 첫 사랑의 이별과 슬픔을 잘 그렸다. 이곳 광산촌에서 자란 ‘완’은 15살 되던 해 타이베이로 나가서 인쇄공장에서 일하고, 고향의 여자 친구인 ‘후엔’도 타이베이로 와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고향의 가족을 위하여 힘겨운 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굳게 약속한 사이였지만 완이 입영영장을 받고 군대에 간 후 제대를 앞두고 후엔의 편지가 끊겼다. 완이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후엔은 우체부로 일하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다(후호현 감독에 관하여는 2019.1.7. 2.28 평화기념공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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