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는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난도질되어 있었다. 얼굴 부분에만 십여 군데의 자상 흔적이 남아 있었다. 피 묻은 두 팔은 동아줄에 걸린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목에는 예리한 칼날이 파고 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 칼자국은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깊이 파인 채 입을 벌렸다. 그것은 흡혈귀의 입처럼 공기 중을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 선배가 나를 끌어 당겼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사체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나 선배는 내게 자리를 물려주며 꼼꼼하게 살펴보라는 눈치를 보냈다. 그리고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나의 내면세계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혹시 아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를 쳐다봤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세히 봐, 전혀 모르는 사람이야?”

나는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혀 낯설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한국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가죽 베낀 토끼같이 칼자국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검은 머리칼과 납작한 이마, 등으로 미루어 한국계가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단정을 지었다. 애써 역겨움을 참으며 사체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가 왜 채린의 실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알고 싶은 충동에서였다.

그는 성긴 피투성이를 씻어내긴 했지만 눈자위나 귀 뒷부분, 그리고 뒤통수에는 여전히 검붉은 핏덩이가 엉겨 있었다. 어디서도 내가 본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나 선배의 눈을 봤다. 그는 내 눈을 파면서 이번에는 정면에서 한번 살펴보라며 턱짓을 했다. 그는 숨진자의 신원 확인이 채린의 실종을 해결하는데 실마리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잔뜩 하고 있었다. 그는 내 눈에서 잠시도 눈초리를 떼지 않았다. 내 표정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관찰했다. 내 표정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정면으로 눈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없이 누워있는 주검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자 그제야 희미한 모습이 뇌리를 바람처럼 스쳤다. 얼굴이 온통 자상으로 뒤덮여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분명 어디에서 한 번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더욱 세심하게 기억을 더듬었다.

도대체 이게 누구야. 무슨 이유로 채린의 실종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 거야?’

나는 그의 외형을 곰곰이 뜯어봤다. 광대뼈가 다소 튀어나오고 턱뼈가 빗겨 나온 모습이 ........

한참 동안을 지켜봤지만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얼굴 옆면을 자세히 봤다. 말이 사체를 살피는 것이지 맨 정신으로 결코 두 번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순간 사체의 왼쪽 볼 밑에 돋아난 검은 사마귀가 선명하게 보였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게 누구야?”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는 상처투성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기바리쏘워에서 나를 만나기로 했던 박 인석이었다. 내가 사체의 볼 아래 붙은 검은 사마귀를 보고 박 인석이란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 사마귀를 본 기억이 있어서였다. 블라디미르 선상 호텔에서였다. 그가 이곳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을 때 내 눈은 그 사마귀에 고정되곤 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 사마귀를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지만 그럴 때마다 내시선이 더욱 그 사마귀에 이끌리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또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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