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정권 교체에도 어제와 같은 정치 수준

지난 2016년 11월 26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결의대회 및 촛불집회 모습. 민주당 홈페이지
지난 2016년 11월 26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결의대회 및 촛불집회 모습. 민주당 홈페이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아직 ‘봄’이라기엔 이를지 모르지만 절기상 입춘(4일)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올해는 눈 오는 날도 적어 봄이 더 빨리 올 것 같은데, 바람은 여전히 찬 겨울이다. 겨울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건 계절만이 아닌 듯 싶다. 우리나라 정치 기상도 역시 한겨울 날씨 못지않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물론 정치에 있어 여야 공방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정부와 여당의 잘못을 야당이 따지고 짚어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국민의 삶과 기본권을 온전히 지켜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 현실은 어떤가. 정치의 ‘품격’은 고사하고 소통과 협치는 사라진 채 틈만 나면 상대를 공격하기 바쁘다.

말로만 소통과 협치, 틈만 나면 정쟁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를 한지 21개월, 대통령 임기는 전체의 3분의 1이 지났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게 정말 나라다운 나라냐’고.

‘만사청통(萬事靑通 모든 일은 청와대로 통한다)’, ‘청와대 정부’는 이제 정치권에서 흔한 말이다. 초대 내각 구성부터 불거진 ‘부실 검증’ 논란이 계속 이어지며 인사청문회 ‘무용론’ 마저 불러왔다. 정권 초기 내걸었던 ‘적폐청산’은 국민들에 피로감을 안겼고, 야당은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며 맞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친박’과 현 정부의 ‘친문’은 무엇이 다른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친노가 ‘폐족(廢族)’으로 몰렸던 지난날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자기비판’ 인색한 정부‧여당, 권력 맛에 취했나

청와대는 지난해 말 내부 기강 해이로 물의를 빚기 시작해 ‘미꾸라지’와 전면전을 치르느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올해 들어서는 손혜원‧서영교 의원이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집권 여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얼마 전에는 문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됐다. 이번엔 여당인 민주당이 들고 일어섰다.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재판”이라며 법원 판결에 불복하기에 이르렀다. 판결 내용에 대한 비판이 아닌, 판사 신상털이로 ‘프레임 정치’를 하는 모양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벌써부터 권력이란 맛에 취해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모두 ‘제 편’인 줄 아나 보다. ‘20년 집권’을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 국민들이 아니다.

정권 내주고 정신 못 차리는 한국당, 더 무너져야 하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해 6월 1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상의원총회를 갖고 6.13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보여준 국민들의 심판에 사죄의 무릎을 꿇었다. 한국당 홈페이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해 6월 1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상의원총회를 갖고 6.13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보여준 국민들의 심판에 사죄의 무릎을 꿇었다. 한국당 홈페이지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의 거듭되는 악재와 대선 경선급 전당대회가 될 것이란 기대 속에 지지율이 반등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지지율 30%까지 육박하며 민주당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물론 한국당에도 여러 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전대가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겹친다는 이유로 당권 주자 8명 중 6명이 일정 연기를 요구하며 경선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 중 오세훈 전 시장을 제외한 5명은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종국적으로 황교안 전 총리와 오세훈 전 시장 대결로 좁혀지는 양상이다.

한 당권 주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전대 날짜를 지키는 게 어떻게 국민과 약속이냐”며 반발했다. 당대표의 경우 일반 국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린가. 전대 불출마 명분으로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갖다 붙인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여기에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은 ‘5.18진상규명 공청회’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잘나가던 판을 순식간에 뒤집었다. 제대로 집어넣은 자살골이다. 여야 4당의 징계안 제출은 둘째 치고, 국민적 공분에 이번 주 한국당 지지율 하락은 ‘안 봐도 비디오’다. 지방선거 후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는 현수막 앞에 무릎 꿇고 국민에 사죄했던 게 1년도 안 된 일이다.

‘나라다운 나라’ 기대한 국민들은 뭐라고 할까

국민가수 송대관이 부른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노랫말. ‘A라는 사람도 사랑하고, B라는 사람도 사랑했지만, 모두가 똑같더라 똑같더라. 진실한 가슴이 없더라’

지금은 영어(囹圄)의 몸이 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들 지지를 받아 당선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시민혁명’으로 정권을 쥐었다. 그래서 정권을 내준 이나, 정권을 잡은 이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이는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에게 권한을 대행 받은 정부와 국회라면, 국민들에게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국정농단 사태로 세 차례 대국민담화를 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아 지탄을 받았다. 기자들 역시 질문을 못했다는 이유로 된서리를 맞았다. 바뀐 정권에선 질문은 받아주는데, 답이 잘 안 나온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부 기자들에게 ‘자괴감’은 숙명인가 보다. 트로트 가사에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순화했지만,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정치에 신물 난 국민들은 이렇게 욕할지도 모른다. “그놈이나 이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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