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육동일 충남대 교수 · 자유한국당 유성을 당협위원장

과학도시 대표 모델인 미국 남동부 테크노벨리 ‘리서치트라이엥글 파크(RTP)’. 자료사진.

2월말이 되면 각 대학들이 졸업식 행사를 치른다. 대학과 지역사회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진화해 왔다. 양자를 표현하는 말 가운데 “Town and Gown”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이 처음 등장한 중세시대에는 대학의 모든 강의와 연구가 라틴어로 진행되고 대학이 지역으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이들이 소재해 있는 지역사회간에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지역의 질서를 존중하지 않았으며,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싸움도 많이 벌였다고 한다. 그 결과, 기숙사 같은 대학의 시설이 들어서면 그 인근의 부동산 가치가 떨어졌다. 실제로 옥스퍼드, 예일 등의 대학들이 지역사회와 끊임없는 충돌을 일으키면서 ‘도시와 졸업가운’은 지역사회와 대학간의 불편한 관계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이 관계는 최근까지 이어왔다. 20세기 지식기반경제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학은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는 소중한 기관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지역에서 대학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훌륭한 기능을 가진 졸업생을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영국의 경우, 이러한 기여가 매년 13억 파운드(약 2조 4천억 원)에 달한다고 계산하고 있다. 

둘째, 대학은 새로운 첨단 비즈니스의 성장을 자극하고 기업가 정신을 촉진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영국의 케임브리지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셋째, 첨단연구와 개발활동을 통해 지역사회가 외부의 자본을 유치하는데 기여하며, 지역의 국내외적 경쟁력을 강화시킨다. 또한, 지역대학은 지역에서 가장 큰 고용주가 되어 지역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큰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전권 대학들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그러나 최근 학생 수가 감소하고 이로 인해 대학재정이 악화되고 교육과 연구의 질이 떨어져서 다시 지방대학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 그리고 총장직선제의 미정착 등으로 각 대학마다 상당한 진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역대학들은 심각한 존립위기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대학과 지역사회간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지역발전에 적극 동참하는 일이다. 지역발전의 성패는 지역 내 대학의 경쟁력에 달려있으며, 대학의 경쟁력은 지역의 발전과 지역민들이 보내주는 관심과 지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올해, 유성의 인구가 35만 명을 넘어서서 전국 자치구 중 인구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그렇게 자랑할 만한 성과는 아니다. 대전인구는 계속 줄어서 149만 명 선도 무너졌다. 

대전시 원도심의 주민들은 신도시 유성으로 대탈출(exodus)이 꾸준히 진행 중이다. 세종시 건설의 부수효과가 유성에 나타나고 있지만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유성은 현재 상황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 상화변화에 주목하면서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입장이다. 

그나마 원도심의 바람이 유성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로 유성이 부풀어 올랐지만 이마저 터지거나 바람이 빠지면 대전 전체의 쇠퇴가 가속화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성의 미래 발전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유성구청도 ‘다함께, 더 좋은 유성’의 구정비전을 세우고 4차 산업혁명과 자치분권 중심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기반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구정의 3대 중점 방향을 보면, 첫째, 자치분권 선도전략 마련, 둘째,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 구축, 셋째, 다함께 살고 싶은 더 좋은 도시 조성이다. 대단히 의욕적이고 도전적인 방향 설정이지만, 구청 단위에서 추진해서 성과를 내기에는 지나치게 과욕적인 측면이 있어서 그 실천가능성을 두고 지역대학과의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민선7기 자치분권 선도를 위한 기본전략을 살펴보면, 제한된 현 자치입법권과 열악한 재정여건 및 미흡한 주민권한 속에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구민 결재란 한 칸을 더 만든다고 주민참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전시성, 홍보성 행사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학·연·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관내 7개 대학총장을 비롯한 대덕특구 기관들과 간담회를 갖고 실무적인 협력사업을 모색한다는 계획도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대덕특구의 성과물을 생산화, 산업화하여 지역발전과 최대로 연계하고, 나아가 지역의 인재를 육성해서 대덕특구의 당당한 주체가 되도록 하는 동시에 많은 대전시민들이 대덕특구와 관련된 업무에 종사케 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 / 디트뉴스 자문위원
육동일 충남대 교수 / 디트뉴스 자문위원

대덕특구의 운영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지역대학의 역할과 활동을 재정립해야 하는 한편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초·중·고 교육의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과학단지들은 이 점에서 성공함으로써 진정한 과학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남동부의 테크노벨리 ‘리서치트라이엥글 파크(RTP)’다. RTP는 1950년대 담배와 목화를 주산지로 하는 전형적인 농업지대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첨단산업과 바이오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심도시 랠리시, 더럼시 및 채플힐시 등 3개 도시들은 상호 기능을 삼각벨트로 연계해서 상생발전에 성공했다. 각 도시에 소재한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와 NC사립대 그리고 듀크대는 지역대학에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했다. 과학벨트내 지역주민들의 일자리는 크게 늘어났고, 지역의 전체 소득은 급상승했다. 

당연히 인구도 크게 증가했다. 무엇보다 과학도시내 주민들은 지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속에 미래에 대해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지역의 인재들이 지역에 있는 좋은 학교와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육성되어 과학단지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성이 안고 있는 숱한 과제들을 수도권 명문대학들이 모두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우리 지역에 소재한 카이스트 대학에만 과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미루어서도 안된다. 

지역민의 관점에서 그리고 지역대학의 판단으로 연구와 개발과정에 적극 참여해서 유성의 발전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지역대학의 당연한 권리이자 유성구민과 대전시민이 지역대학에 요구하는 무거운 명령이기도 하다. 유성구의 미래는 전적으로 유성에 소재하고 있는 지역대학의 수준과 노력에 달려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