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 경찰 민주화 위한 첫발... 이제는 더 큰 꿈을 향해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경찰대 1기를 졸업하고 늘 내부개혁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지금은 고향 대전의 치안총수를 맡아 대전경찰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경찰대 1기를 졸업하고 늘 내부개혁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지금은 고향 대전의 치안총수를 맡아 대전경찰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를 알게 된 건 2006년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도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첫 통화’였다. 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난 건 아마도 2008년이었다.

그리고 2014년에 한 번, 5년이 지난 2019년 설 명절을 앞두고 또 한 번 만났다. 물론 중간 중간 전화나 문자로 대화를 나눴지만 대면한 건 이렇게 서너번 정도. 만날 때마다 그의 어깨에 무게는 하나씩 늘어나 있었다. 태극무궁화 4개(총경)였다가, 태극장을 중심으로 5각의 무궁화가 한 개(경무관). 그리고 이제는 5각의 무궁화 2개를 단 그를 만났다.

이는 지난 연말 대전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 황운하(57) 청장의 얘기다. 기자가 황 청장을 처음 만난 건 유천동 집창촌 해체를 본격 추진하던 2008년 중부서장 때였으나, 그 이전 서부서장이던 무렵에 이미 알고 있었다. 황 청장은 경찰청 수사국에서 수사권조정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검경 간 수사권 독립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또 경찰청장 인사를 비판한 소위 항명파 인물로 소위 유배성 전보와 좌천을 번갈아 하기도 했다.

2011년 경무관 승진 이후, 계급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2017년 치안감으로 승진해 울산청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연말 고향 대전의 치안총수가 됐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언론은 '금의환향'이라며 대부분 반겼다. 새로운 길을 걷게 된 그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기대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고향사람이니까 잘 하겠지’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아 부담이 있다"고 토로했다.

기자와 황 청장의 직전 인터뷰는 2014년 7월이었다. 당시는 황 청장의 어깨 계급장이 5각 무궁화 한 개인 때였다. 공식 직함은 대전경찰청 1,2 부장. 황 청장은 부장 시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가지 바람을 털어놨다. 그 중 하나가 ‘고향의 치안총수’였다. 4년만에 꿈을 이뤘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렇게 5년만에 만난 황 청장은 계급장을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어보였다. 늘 그랬듯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차분한 말투와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는 다소 긴 대화 등등. 한 번 질문하면 A4용지 한 장이 가득찰 정도로 많은 얘기를 하는 게 황 청장식 답변이다. 때문에 황 청장과의 인터뷰는 장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황 청장은 어떻게 자라왔고, 왜 경찰이 됐을까. 그래도 황 청장을 조금은 안다고 자부한 기자ㅡ그 앎도 대부분 황 청장의 활동이 위주ㅡ였지만 황 청장이 자라온 배경과 경찰이 되기까지는 잘 몰랐다.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랬더니 오랜 시간을 할애한 답변이 돌아왔다.

1962년 지금의 대덕구 오정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현암초에 입학했다가 중구 사정동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문화초로 전학했다. 이후 새롭게 설립된 산성초로 옮겨 그 곳에서 졸업했다. 초등학교만 3개를 다녔다. 

황해도 출신 선친은 한국전쟁 때 유격대로 활동하다 국방군에 편입된 북한 반체제 인사 중 한명이었다. 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와 대전에 정착했다고 한다. 때문에 삶이 여유롭지 못했지만 지식인이라 자식들에 대한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동산중으로 진학한 1학년 초기 학습의 어려움을 겪던 그가 우등생 반열에 들 수 있게 된 것은 선친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중학교를 9등으로 졸업한 그의 ‘대전고 낙방’은 예상치 못한 시련이었다. 재수를 고민하다가 서대전고에 후기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1979년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서거 사건이다. 그는 사건 이후 시사월간지를 탐독하면서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정리했고 그러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그의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황 청장이 대전경찰청 제1, 2부장 시절이던 지난 2014년 기자와 인터뷰 당시 모습. 당시 황 청장은 고향의 치안총수, 그리고 정계 입문 등 2가지 바람을 털어놨었다.
황 청장이 대전경찰청 제1, 2부장 시절이던 지난 2014년 기자와 인터뷰 당시 모습. 당시 황 청장은 고향의 치안총수, 그리고 정계 입문 등 2가지 바람을 털어놨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목표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녹록치 않은 탓에 상경을 하게 되면 어떻게 숙식을 해결해야 할 지 막막했다. 그러던 즈음 경찰대 입학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학비 면제에 숙식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경위로 임용되는 장점도 있었다. 이후 학력고사를 치르고 중앙대·한양대·경희대 등 대학의 4년 학비 면제 및 월 30만 원 가량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을 받았지만 경찰대를 택하게 된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과 경찰대를 졸업해 경찰 조직의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심산의 결정체가 대학 결정의 이유였다.

즉, 황 청장이 경찰복을 입게 된 건 어려서부터 키워온 꿈이라기보다는 가정 형편을 고려하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인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더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경찰대를 1기로 졸업한 그는 경찰 내부의 개혁과 '참경찰인' 배출을 위해 힘썼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어려운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검찰과 비교되며 상하 종속적 관계인 듯 경찰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참경찰’이 되고 ‘참경찰’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찰 내부의 민주화가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더욱 내부 개혁에 힘써왔다. 그동안 경찰 조직은 시민을 위한 경찰이 아닌, 관행처럼 정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이며 조직문화가 변질돼 있던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자본과 권력에 약하고 힘없는 시민들에게 강했다는 게 경찰들의 솔직한 자화상이다. 이에 황 청장은 ‘시민을 위한 경찰’을 목표로 삼았다. 강자에게는 당당하고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경찰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음에도 인연을 찾지 못하다 지인의 소개로 37세 때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그리고 만난 지 100일 만에 결혼에 골인해 5년만인 2004년에 딸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경찰이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기자 질문에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힘줘 말했다. 경찰 조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그 다운 대답이다.

경찰에 대한 애정이 남 못지않은 그에게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 되겠냐고 물으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정확히는 "다시 태어나면 경찰을 반드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이 매력적인 직업이긴 하지만 공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은 여러 일이 있을 수 있다"며 다른 직업으로의 선회 가능성도 내비쳤다. 경찰 이외에 공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2014년 인터뷰 당시 그가 언급했던 바람 중 나머지 하나. 바로 정계 입문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정계 입문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을 줄기차게 주창해 왔던 그였기에 그런 주장을 성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정계 입문이 가장 설득력을 얻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이 예고된 탓에 그의 총선 출마 여부는 지역정가의 최대 관심 사항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그의 총선 출마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대전경찰은 마치 그를 기다렸다는 듯 희소식이 잇따라 들려왔다. 여성인 송정애 총경이 경무관으로 승진한 데 이어 대전경찰청 개청 이래 처음으로 총경 3명이 승진하는 등 겹경사를 맞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같은 희소식도 황 청장의 영향력 덕분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말을 아꼈다. 황 청장은 "기대(총선 출마설)는 고맙지만 경찰로서 더 할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우선"이라며 "변화된 대전경찰을 위해 더 많이 뛰고 있는 만큼 대전경찰청장으로서 응원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지방경찰청장이라는 현직을 의식한 답변으로 보인다. 그는 대전청장 뿐 아니라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더 높은 자리에서 경찰 조직의 민주화와 검경 간 수사권 조정 등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일단 정계 입문에서 한 발짝 비켜선 모습이다.

황 청장의 이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기반으로 총선 출마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는 문 대통령과 관련, "공사석에서 한 두번 뵌 적은 있지만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확실한 선을 그었다.

황 청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스스로 노력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그가 지향하는 참경찰상을 위해 더 높은 꿈을 키우고 있다. 그것이 경찰 내부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자리에 있든 지역 출신이라는 점과 개혁론자라는 점은 변치 않아야 하고 변치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일 경우 그 기대감은 한순간에 실망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미래를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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