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19]
탈북자 [119]
  • 이광희
  • 승인 2019.02.07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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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스트로이카. 좋지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 개가 러시아 개에게 물었답니다.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달라고. 그랬더니 러시아개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글쎄. 그들은 매우 오랫동안 쇠사슬로 나를 묶어놓았단다. 이젠 나도 내가 원할 때 짖을 수가 있게 됐단다. 하지만 그들은 내 저녁 밥그릇을 더욱 멀리 옮겨다 놓았지 뭐니 라고 말입니다. 고르바쵸프의 개혁은 스탈린 시대부터 방향이 잘못 잡힌 것을 수정한 것에 불과하지요. 본래의 혁명정신으로 복귀한다고나 할까. 그러다보니 한계가 생긴 거죠. 한때 브레즈네프시대의 과거를 청산하려 했지만 성공적이라고 볼 수가 없죠, 다만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밖엔.......”

그는 쓴 입맛을 다신 다음 술을 모조리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것 같아 보였다. 술기운이 오른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같이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현재의 러시아 문화는 위기를 맞고 있죠. 위기. 하지만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니까 그런 변화 속에서 각성과 발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이지요,”

마트로시카를 아세요?”

마트로시카?”

. 목각인형 말이요.”

.”

나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극동군 사령부가 있는 거리의 모퉁이에서 노점상이 팔고 있던 나무인형이 떠올랐다.

그 나무 인형은 꽃을 든 러시아 시골아가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입고 꽃바구니를 든 예쁜 인형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핑크빛 연지를 찍고 꽃바구니를 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인형이 특이한 것은 인형 속에 또 다른 인형을 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다. 인형을 열면 인형이 나오고, 또 인형을 열면 인형이 나오는.....

마트로시카가 어때서요

그 인형이 러시아 사회의 변천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는 얘기죠. 러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이 아이들의 노리개로 전락했으니까요. 옐친의 속을 열어 보면 고르바초프가 나오고, 또 그 속을 살펴보면 브레즈네프가, 또 그 속에 스탈린이 있으며 가장 내면에 레닌이 도사리고 있는 모습은 러시아 정치발전사를 인형을 통해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 의미있죠.”

“..........”

“91년 까지만 해도 공원에서 이런 마트로시카를 파는 노점상들이 경찰 단속반이 나타나면 재빨리 인형들을 감추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만큼 민주화가 된 셈이죠. 그동안 세심하게 관리되어온 정치 지도자들의 신화가 그 인형의 등장으로 깡그리 무너졌는데도 누구하나 제재하려질 않거든요. 레닌과 스탈린의 신화가 소리 없이 붕괴됐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죠.”

그렇군요.”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러시아 문화사를 구슬을 꿰듯 조목조목 짚어갈 때마다 속으로 탄성을 토했다. 내 직관이 적중했다. 처음부터 그는 인텔리겐치아가 확실 했다.

왜 마피아가 됐소?”

어렵게 질문을 던졌다.

마피아 아니죠. 잘못 이해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죠. 서구식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우리사회에서는 이것을 마피아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보를 상품화하고 주민보호를 상품으로 개발한 기업에 불과합니다. 사회가 변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신생기업이란 표현이 적절할 겁니다. 국가권력이나 경찰력도 미치지 못하는 구석구석까지 우리의 치안력이 미치니까요. 선생님도 이런 우리기업의 상품을 애용하는 것 아니겠어요. 상가나 주점의 관리도 마찬가지죠.”

그는 얘기를 하며 배를 내밀고 벌렁 자리에 누웠다. 마피아에 대해 내게 설명을 하면서 그곳에서 자신의 입지가 굳어지고 있음을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 누워 빈정거리는 모습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주술같이 되풀이했다.

나도 침대에 몸을 눕히고 몽롱하게 머리를 빠져 나가는 정신을 음미하고 있었다. 눈을 감자 숱한 별빛이 우박같이 사선을 그으며 머리위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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