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56] 양정철과 유시민, 김경수와 안희정

‘양정철’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때는 노무현 사람이었고, 한때는 문재인 사람이었죠.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리는 '3철' 중 한 명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5년 동안 홍보수석실 비서관을 했고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2017년 정권교체를 이루기까지 캠프 핵심인사로 활동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공신 중 한명이죠. 문재인의 시대, 그는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없습니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국내외를 오가며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데요. 대통령에 누(累)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랍니다.

외국에 머물던 그가 지난해 1월 국내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요. 본인이 쓴 책을 홍보하고, 북 콘서트도 할 겸 발길을 한 겁니다. 언론은 모처럼 국내에 얼굴을 드러낸 그에게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정치권에 복귀할거냐, 총선에 출마할거냐. 그는 단호했습니다. “출마나 정치할 일은 없다.” 다시 1년이 지난 올해 초. 그는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앞두고 하마평에 올랐습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후임으로 들어올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결국 ‘설(說)’로 끝났지만요. 그는 당시 한 중앙지와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나 굳은 심지를 가진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겠지요?

그는 지난해 쓴 《세상을 바꾸는 언어》 서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나눈 일화를 회고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까지 해봤지만, 결국 정치는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고 고통만 남길 뿐 세상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더라는 경험을 아프게 고백하셨다. 그러니 정치하지 말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같이 좋은 책을 내자고 하셨다. (중략)..노 전 대통령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나, 결국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역시, 노무현이 옳았다.”

작가 유시민. 요즘 유튜브 ‘알릴레오’로 상종가를 치고 있죠. 그는 ‘노무현의 남자’였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요. 지금은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 역시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글쓰기에 파묻혀 삽니다. 정치권에서 아무리 흔들어대도 ‘글쟁이’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나 봅니다. 그는 최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공문을 보내 자신을 '차기 대선 여론조사 대상에서 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심위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언론 및 여론조사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지난 7일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제가 (정계복귀를) 안할 건데 자꾸 거론되고, 일부 여론조사에도 자꾸 들어가면 (곤란하다)"며 "대통령 후보든 국회의원 후보든, 정치할 사람 중에 골라야하는데, 하지도 않을 사람을 넣으면 일정한 여론 왜곡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내버려두면 될 걸, 싶다가도요. 얼마나 정치에 질렸으면 저럴까, 측은한 생각도 듭니다.

양정철과 유시민과 함께 친노‧친문 그룹으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 공교롭게 두 사람은 법의 심판대 앞에 서 있습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지만요.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서 말입니다.

김경수 지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지난 30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습니다. 이 형(刑)이 확정되면 도지사 당선은 무효입니다. 야당은 지사직을 내려놓으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난 대선의 정당성 문제를 걸고 넘어지며 문 대통령을 옥죄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1일) 오후 2시30분. 안희정 전 지사가 법정에 섭니다. 그는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지난해 4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는데요. 이번 2심에선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지난해 초만 해도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였습니다. 승승장구, 탄탄대로가 예상되던 그가 전 국민을 놀라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오늘 재판에서 기사회생한다면 정치복귀에 실낱같은 희망은 생길 겁니다. 물론, 유죄가 나오면 그 반대일 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측근들에게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지요. 안 전 지사에는 “농사를 지어라”고 했고요. 하지만 두 사람은 기어코 정치판에 발을 들였고, 모진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인 임종석 전 실장이 페이스 북에 ‘경수야’로 시작하며 남긴 글입니다. “'정치하지 말라'던 노무현 대통령님 유언이 다시 아프게 와서 꽂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함께 만감이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는 문 대통령일 겁니다. 자신이 정치인의 길을 걷도록 만든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동지가 처한 위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요. 더구나 국가 최고 권력을 손에 쥐고서도. 양정철 전 비서관과 유시민 작가가 왜 정치와 거리를 두고, 대선 후보에서 빼 달라고 안달하는 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문 대통령 취미가 ‘등산’입니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대전 장태산에 올랐고, 가을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을 올랐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도 열심히 보는데요. 엊그제(30일)는 경제과학특보(특별보좌관)로 위촉한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쓴 《축적의 길》을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설 선물로 줬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기에 ‘축적이 돼야 변화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청와대 직원부터 실천했으면 하는 취지라고 합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2012년 대선 패배 아픔을 털고 ‘끝이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치유와 위로의 계기를 갖는 차원에서 문 대통령 내외와 뉴질랜드 트레킹을 다녀왔습니다. 또 2017년 대선을 앞두곤 네팔 히말라야와 부탄 트레킹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올해 설 명절, 문 대통령은 어느 산에 오르고, 어떤 책을 읽으며 ‘축적의 시간’을 보낼까요? 더불어 트럼프와 김정은은 문 대통령 얼굴이 활짝 펴질 선물보따리를 내놓을지도 자못 궁금한 2월의 첫날입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