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일자리 상황판을 설명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일자리 상황판을 설명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아버지는 아들이 작은 구멍가게 하나를 차릴 때도 장사가 잘 될지 안 될지 물어보고 도와준다. 그게 정상적인 아버지다. 그런데 한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규모가 훨씬 큰 슈퍼마켓 창업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금을 대주려 한다. 온라인 쇼핑과 택배 세상이 오면서 대형마트나 슈퍼가 위기라는 것쯤은 아버지도 알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의아해 하자, 아버지는 “아들의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라고 둘러댄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안다.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위기 수습용이라는 것을. 

아들 사업 자금 묻지도 않고 대주겠다는 아버지의 속사정

나라 살림에서는 대통령이 아버지 역할을 한다. 그동안 대통령들은 지방에서 500억 원 이상의 사업을 벌일 때는 경제성이 있는지, 아니면 장래성이라도 있는지 알아보고 지원해주는 원칙을 지켜왔다. 조건에 안 맞으면 예타를 거치는 시늉은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500억 원의 근 500배에 이르는 24조원 규모의 사업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지원해주는 결정을 내렸다. 대개 본전은커녕 절반도 못 건지고 세금만 먹는 하마가 될 사업들이다.

24조 원이 지원되는 ‘예타면제’(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는 문재인 정부의 살림 장부에는 원래 없던 조목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예타면제’ 같은 대형 SOC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하고 의료 복지 분야를 크게 늘리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전 정부에 비해 복지 비중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느닷없이 방향을 틀면서 SOC사업을 크게 늘렸으니 복지 의료 예산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복지든 SOC든 그 비용은 전부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은 한 푼도 없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국민 전체의 수입이 올라가더라도 잘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의 격차가 너무 크면 그것도 문제다. 대통령은 여러 측면을 보고 나라 살림을 꾸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수입이 너무 적은 사람의 월급을 더 올려주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정책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의의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여건이 되어야 하고 때가 맞아야 효과를 본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1만원 정책’은 부작용이 너무 크다. 이 정책 덕분에 시간당 1만원을 벌게 된 사람들도 있으나, 1만원이 채 안 되더라도 일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조차 실업자로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없었다.

국민들이 겪고 피부로 느끼는 ‘1만원 정책’의 여파

며칠 전 필자는 직원 100명 정도의 한 중소기업이 1만원 정책 때문에 30명을 감원하게 된 사정을 후배한테 들었다. ‘1만원’ 정책이 식당이나 편의점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1만원 문제는 언론들도 자주 보도했지만, 그 피해를 직접 받았거나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어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정책이다.

‘1만원’ 때문인지, 실업률 등 각종 경제지표가 일제히 바닥 쪽을 가르키고 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못 사는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모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탓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유시민 씨의 해명처럼 시대 여건과 상황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구조적 요인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는 변명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1만원 정책을 억지로 밀어붙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작금의 경제 위기는 세계적인 불황 같은 외부 여건이나 어쩔 도리가 없는 돌발 사태로 인한 것이 아니라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 탓에 빚어지는 일로 여기는 국민들이 많다. ‘정부의 잘못’이라는 판단이 경제학적으론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들 상식으로는 그렇게 보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도 위태위태해지면서 심각한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국민들도 정부 정책이 늘 성공할 수는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기에도 ‘저건 아닌데..’하는 정책을 고집하다가 실패하면 대통령과 정부는 큰 타격을 받는다. ‘1만원 정책’은 결과적으로 그런 정책이 되어 있다. ‘1만원’의 부작용은 정부의 예상보다 훨씬 크고 피해도 심각하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우리 정책은 바뀐 게 없다”며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다. 말만 그렇다. 발걸음은 이미 ‘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1만원 사고’ 뒷감당 못하자 들고 나온 ‘24조원 가래’

‘예타면제’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분명히 ‘남의 길’이다. 토건족(土建族)이었던 MB가 걷던 ‘4대강의 길’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야당시절 그토록 비판하던 MB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4차산업시대가 이미 닥쳐오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용 토건사업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것이며 미래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사업이다. ‘토건족의 길’은 이제 안 된다는 점을 온국민이 알고 있고, 문 대통령 자신의 살림 장부에도 없던 길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문 대통령은 남의 길을 가게 된 것인가? 

‘1만원’ 때문에 벌어지는 일 아닌가 한다. 필자는 나비효과가 연상된다. 1만원의 부작용이 사방팔방 일파만파로 번지고 커지면서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자, 당황한 정부가 황급히 움켜잡은 게 대형 SOC사업이다. 사정이 급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퍼주는 마구잡이 행정이다. 국민 혈세를 이런 식으로 쓰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1만원 사고’를 내고 뒷감당이 안 되자 ‘25조 짜리 가래’로 막으려는 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만원 사고’라기보다 문재인 정부의 ‘아집이 불러온 사고’라고 해야 맞다. ‘1만원 정책’ 자체는 죄가 없다. 취지는 좋은 만큼 한번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취지가 좋고 성공 가능성이 있어도 막상 해보면 안 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금방은 안 되더라도 계속 밀고 나갈 만한 경우가 있고, 수정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될 일도 있다. 후자의 경우인 데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사고가 터지게 돼 있다. 큰 사고가 나면 누구라도 자기 길을 가기 어렵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처지라고 본다.

MB는 자기 ‘고집’ 때문에 4대강이란 자신의 길을 갔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아집’ 때문에 도리어 남의 길을 뒤따라 가고 있다. 아이러니다. 4대강은 반대론자도 많았으나 MB 자신에겐 소신이었고 그래서 고집을 부렸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가는 길은 자기의 원래 소신이 아니며, 더구나 스스로가 결사 반대하던 MB의 길이고,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지금 시점에선 더더욱 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수정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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