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대법원장이 구속된 건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적용된 죄는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판사에 대한 인사권 등을 남용하여 법관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친 혐의를 수사해왔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40여개나 되지만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하여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해쳤다는 점이다. 법치 국가에서 사법부는 대통령이 책임지고 있는 행정부, 국회가 맡고 있는 입법부와 함께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사법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법치국가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국가와 국민들을 얼마나 큰 위험에 빠뜨리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에 가장 큰 책임을 진 사법부의 수장이다.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는 각종 압력을 막아낼 의무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로부터의 압력이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내야 한다. 양 대법원장은 일제징용 재판이나 전교조 재판 등에서 대통령 등 행정부와 거래한 의혹이 드러나 있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선 중대한 범죄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실질적인 독립을 의미한다. 법관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해줄 책임이 법원에 있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행정권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보장해줄 책임 있다. 양 전 대법관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판사들은 따돌리면서 인사에서도 불이익을 준 혐의가 드러나 있다. 

전 정권 입맛 맞춰 사법부 독립성 해친 대법원장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과정에서도 법관의 독립이 침범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스스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판에 개입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재판 개입 과정에서 반발하는 판사들을 따돌리고 소외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명백하게 밝혀진 것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대법원장에게 사법부 스스로 책임을 묻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들은 ‘전 대법원장의 구속의 문제점’도 알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개인적으로 부정한 돈을 받는 등 파렴치한 행위를 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양 대법원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죄들은 대부분 ‘이념적 정치적 성향’에서 나온 것들이다. 

양 대법원장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제징용 배상 재판,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 등에 대해선 이해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도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전 정권과 현 정권도 서로 달리 바라보는 정치적 이념적 사건이다. 이런 갈등이 있는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전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재판하려 노력한 죄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이런 노력을 하게 된 이유와 배경도 물론 있다. 상고법원 설치는 양 전 대법관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현안이었다. 이걸 실현하기 위해 대법원장은 대통령에 줄을 대고 국회에도 기웃거렸다. 상고법원 설치는 폭증하는 대법관 업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고, 법률 소비자인 국민들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해도 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지은 죄가 개인적 비리보다 대법원장으로서의 권한 남용이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구속’까지 했어야 하느냐는 의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영장전담 판사는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검찰에게 구속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혐의와 증거가 드러날 만큼 드러났고 피의자의 도주 우려도 별로 없다고 보는 게 일반의 인식이라고 봐야 한다

'정치범'에겐 구속을 원하는 나라

우리나라는 아직 정치적 사건에서 피의자 구속 여부는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보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재판은 양승태 전 대법관에 대한 개인적 책임보다 ‘전 정권 사법부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성격을 띠고 있다. 피의자의 구속 여부가 죄의 유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속되면 유죄, 불구속이면 무죄처럼 비쳐지는 풍토에서 ‘불구속 원칙’은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당한다.

인권과 정의를 내세우는 정권도 상대편에 대해선 인권을 말하지 않는다. ‘과도한 정치’가 가져오는 부작용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사상범이나 정치범은 있을 수 없고 그와 비슷한 범죄가 있다 해도 구속되지 않는다. 정치범에게 가혹한 나라일수록 후진국이다. 전 정권과 묶여 있는 양 전 대법관은 정치범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우리나라의 이런 수준과 무관치 않은 현상이다.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71세의 자연인 양승태’에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나, ‘사법부 수장의 막중한 책임’을 저버린 죄값으로는 구속도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이제 대통령 장차관 국회의원 시도지사 등도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직무를 저버린 죄만으로도 구속이 될 수 있다는 전례로 남을 것이다. 이런 나라가 정상은 아니지만 우리의 정치 수준을 보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게 불가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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