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는 사회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들 스스로가 만든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을 대신해서 권력기관의 부정 부패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또 사회에 바람직한 제도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주장하는 것도 시민단체의 일이다. 국민과 지역주민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역할을 한다. 시민들로선 고마운 일이다.

본래 이런 일은 공식적으로 하는 곳이 따로 있다. 정당이다. 정당 제도는 우리 사회를 누가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국민들은 더 좋은 아이디어, 더 나은 도덕성, 더 우수한 능력을 가진 정당에게 그렇게 해볼 수 있는 기회와 권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렇게 국민들에게 선택된 정당도 권력을 잡으면 부패하게 돼 있다. 부패하기 쉬운 게 권력의 속성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 이러한 권력을 감시해주었으면 하는 게 많은 국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본래 언론의 역할인데 국민들은 언론이 하는 말도 믿기 어렵게 됐다. 자기와 생각이 같은 권력은 밀어주고 아부하면서 한통속이 되어, 권력 감시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권언유착 현상이 나타났다. 권력에 대한 ‘공정한 감시자’는 없어졌다. 손혜원 의원 사건을 대하는 태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쪽에선 융단 폭격을 가하고 다른 쪽에선 오히려 그를 해명해주기에 바쁘다.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시민들의 기대를 업고 등장한 게 원래 시민단체 아닌가? 언론만 가지고는 권력 감시가 잘 안 되니 그걸 해달라는 게 국민들이 시민단체에 대해 갖는 가장 큰 기대였다. 그런데 지금 시민단체는 권력에 대한 감시에 둔감해졌다. 둔감해졌다기보다는 외눈박이가 되었다. 내가 감시하고 싶은 대상만 감시하고 비판하는 정당의 아류가 되었다. 시민단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내편’에겐 큰 잘못도 못 본체하면서 ‘네편’에겐 작은 허물에도 현미경을 들이댄다.

인권이나 불법의 기준은 진보와 보수가 다를 수 없다. 불법선거는 진보에게도 보수에게도 불법이고, 인권은 진보에게도 보수에게도 똑 같은 인권이다. 그러나 지금 시민단체가 보는 불법과 인권은 하나가 아니다. ‘어느 쪽의 불법’이냐, ‘어느 편의 인권이냐’에 따라 불법도 합법처럼 대하고, 합법도 불법처럼 대한다. 공익 제보가 상대편에 유리하면 그 제보자의 인권은 나몰라라하고, 내편에 유리하고 상대를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라야 논평다운 논평을 낸다.

단체든 개인이든 자신이 선호하는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진보단체는 진보적인 이념에, 보수단체는 보수적인 아이디어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 또한 ‘권력 감시’만큼이나 시민단체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그 ‘색깔’ 때문에 편파적인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면 시민단체의 감시 역할은 아예 포기하는 게 낫다. 감시의 칼이 어느 한쪽을 향해서만 쓰인다면 이야말로 감시받아야 하는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과 언론 등이 권력과 이권을 놓고 벌이는 부정 부패의 아귀다툼에 시민단체까지 뛰어든 것과 다름없다.

내편 봐주고 네편만 비판하는 시민단체라면

판사가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내편만 손을 들어준다면 그런 판사는 재판을 할 수 없도록 해야 맞다. 시민단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공정한 감시’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권력에 대한 감시 권한 자체를 내려놔야 한다. 어느 쪽의 부정 부패 사건에도 논평을 내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비판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은 권력과 언론이 이미 충분히 하고 있는데, 시민단체까지 나설 이유가 없다.

시민단체가 권력과 언론의 모습처럼 변한 것은 권력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이제 언론이나 야당 못지않은 권력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시민단체 눈치를 본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힘이 커지면 공정하기 힘들다. 자기 힘을 유지하고 과시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거기에서 부정 부패가 생겨나고, 정의나 공정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시민단체의 편파성은 시민단체가 그런 길을 가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지금 우리 지역에서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근래 김소연 대전시의원에 의해 본격 제기된 시민단체의 편파성 논란은 시민단체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어려움도 알고 있다. 시민단체는 본시 돈이 생기는 일을 하자고 만든 조직이 아니고 시민들의 후원이 활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운영의 어려움은 짐작이 간다. 시민들이 선뜻 나서서 시민단체를 비판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렇다 해도 시민단체의 어떤 사정들이 시민단체의 편파성을 인정해주는 명분은 될 수 없다. 

정치도 언론도 유튜브도, 좌도 우도 온통 내편이냐 네편이냐가 가장 큰 기준이다. 시민단체마저 똑같은 목적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여기에 끼어든다면 시민들에게 시민단체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세상이 혼란스럽다. ‘그래도 믿을 만 해’ 하는 시민단체 하나 갖는 건 정녕 시민들이 바랄 수 없는 꿈인가? 시민들은 시민단체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만 시민단체가 제 역할을 하면 언제든지 관심과 응원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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