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황 총리를 모신 한 비서관의 제언
당 체질 바꿔 공천개혁 선도하고 사람 끌어안을 때

황교안 전 총리. 자료사진.
황교안 전 총리. 자료사진.

나는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가장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을 묻는 질문에 ‘동물의 왕국’을 얘기했다. 집에는 상당수의 ‘동물의 왕국’ 비디오가 있었다고 한다. 

‘동물의 왕국’하면 역시 동물의 왕인 사자가 나와야 재미있다. 짝짓기로 종족을 늘리고, 전광석화 돌격으로 먹이를 포획하며,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영역을 확대하다가 제국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가끔 전율을 느끼곤 한다. 사자를 보다가 사슴이나 기린, 얼룩말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채널을 고정하기가 쉽지 않다. 

‘생물’이라고 하는 정치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식물과 같은 잔잔함이나 초식동물, 아니 사자나 호랑이가 아닌 동물의 스토리는 관객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생물, 더 좁게는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정치의 세계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5일 등장했다. 이를 마치 ‘사자의 등장’으로 만들고 싶은지, 때를 같이해서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논의 중이던 ‘집단지도체제’를 거두고 단일대오의 현행체제를 유지키로 했다. 

언론은 여의도로 돌아온 친박과 비박간 혈전에 더하여 때론 황 총리, 김무성 전 대표, 홍준표 전 대표간 사자급 결투예고로 몰아간다. 고개 숙인 보수층도 기댈만한 큰 인물이 없던 참에 황 총리의 등장을 반기는 눈치다. 

사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자유한국당은 사자를 기다릴 때가 아니다. 황 총리도 지금 사자가 되고 싶다면 그의 앞길은 쉽지 않다. 사자가 포효해야 할 정글은 아직도 협소하고, 게다가 너무도 얼기설기 엮인 '구시대'와 '친박'의 덫에 갇혀 허우적거리는데 진을 뺄 수도 있다.

전대미문의 총선, 대선, 지선에서 3연패와 두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자유한국당은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데드크로스 등을 보면서 매우 상기된 분위기이다. 그런데 아직도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대통령 국정지지율의 절반 수준이고, 30%대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 이후 치른 지난 대선 득표율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것이 자유한국당과 범보수진영에서 유력한 혹은 많은 호감을 얻는 차기 대권주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야를 벗어나서 카리스마 있는 원톱(One Top) 주자에 대한 열망은 필요충분조건처럼 인식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이어 2번의 실패자 이회창 총재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보수진영은 사자의 힘을 지닌 1인 권력자에 의존해왔다. 그 행태는 1인을 정점으로 한 일부 정치인들의 폐쇄적 리그를 만들어 새로운 인재를 키우는데 인색하고, 키운 인재마저도 계파로 길들이는데 공력을 다했다. 

게다가 최근 10년 보수정권을 지나오는 동안 친이, 친박, 주이야박으로 내치고 진박 감별사들이 나타나 내치는 등 10년 내전과 탄핵과 분당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보수진영 내 인사들이 회복하기 힘든 내상과 경력단절을 가져왔다. 보수와 중도 유권자들이 선택할 후보를 스스로 잘라낸 것이다. 

이런 보수진영 생태계에서 새로운 힘센 사자와 같은 지도자를 지금 다시 찾아 세우는 것은 연목구어와 다름이 없다. 총선에서 살아남고 싶은 여의도 정치권의 목마름에 그래도 가능성 있어 보이는 분을 사자로 만들어 일단은 이에 기대고 싶은 여의도적 발상이라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지금의 생태계에 맞게 보수진영의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사자나 호랑이를 기다릴 정도로 인물이 널린 것도 아니고, 사자와 호랑이 새끼도 씨를 말린 정당이 살 길을 근본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제 대한민국은 사자나 호랑이 같은 지도자를 바라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다.  

우선 다른 진영을 배울 법하다. 사자와 같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민주당은 카리스마 있고 확실한 지지층을 지닌 새로운 사자가 없었다. 임기 후반부 한화갑, 김중권, 이인제, 김근태 이들을 꺾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정글 한쪽에 제국을 만들었고 당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사자와 같은 이회창 후보를 이겼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도 그때와 유사하다. 문 대통령 초반기에 거명되었던 안희정, 박원순, 이재명, 김경수, 김부겸의 이름이 줄어들고 이젠 새로이 이낙연 총리와 유시민이 언론에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 사자의 모습은 아니다. 

이를 보수진영은 배워야 한다. 지금 당장의 사자가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영삼 전대통령시절 임기후반부의 이회창, 이수성, 이홍구, 이인제, 박찬종, 김덕룡 등 9룡 시대를 그려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길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심벌은 코끼리와 조랑말이다. 나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친근함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내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대통령을 더 원해서 '하자가 많은', 영어 발음도 형편이 없어서 '영어환자(English Patient)'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기도 했다.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라 옆집 아저씨, 친근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고 싶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사자를 기다리고, 사자를 만들고, 사자에 의존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공천개혁을 선도적으로 추진해야한다. 현재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은 공천개혁의 적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갖고 있는 마음, 즉 시대정신인 "내 말 좀 들어 주세요"를 개혁과정을 통해 끌어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자유한국당 강세인 서울 강남지역에서의 정치신인 선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쇼(show)를 전국으로 확산시켜야한다. 물론 지역 토호가 돼버린 기존의 노회한 정치인이 당선될 수도 있고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강연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그러나 민심을 담으려는 진정성, 큰 전략이 민심에 닿으면 그정도의 잡음은 대수롭지 않다. 노회하고 익숙한 인물이 떨어지고 젊고 새로운 인물로 새로운 보수를 주창하는 모습에 민심은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이제 황교안 전총리가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황 총리의 등장에 대해 세력을 모아 당권을 잡고, 그 힘으로 공천권을 행사하고, 자기사람을 많이 만들어 대권을 잡는 아주 일반적인 정치권의 공식으로 보는 듯하다. 그렇게 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공식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지금은 탄핵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지지율 20%를 겨우 넘어서고 비호감 여론이 아직도 비등한 정상이 아닌 상황이다. 이를 황 총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신중하게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 총리 이미지 자체가 사자가 아니다. 필자가 국무총리실 재직시 모셔본 경험으로는 먼저 자기주장을 하는 스타일이 아닌 남의 말을 많이 듣고 본인의 말에 신중한 분이다. 황 총리는 이 모습을 지켜나가야 한다. 

만약 사자일지라도 황 총리는 사자인 척 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면서 사람을 모아야한다. 모두 끌어안아야 한다. 등소평의 '도광양회'가 필요할 때다.

전당대회 등판이 능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황 총리는 설혹 당권의 길을 가든 안가든 그의 인품처럼 당장 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은 그늘이 넓어서 누구나 넉넉하게 그 아래서 쉴 수 있는 큰 소나무 같은 모습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그가 입당의 변에서 말한 그다운 통합을 보여주는 길이다.

포효하는 사자를 기다리는 동지들과 열렬 관객들에겐 이런 모습이 재미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황교안 총리는 자신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에 희색하지 말고 보수진영 전체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깊게 고민할 때이다. 그게 진정한 사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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