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차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지는 물론 국유지였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토지활용의 효율성을 드높인다는 취지에서 일반 독립 가정에 3백 평 남짓한 대지를 무상 분양했다.

주민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집을 짓고 주말농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것들은 생김새나 규모 ,색깔 등이 제각각이었다. 겉보기에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초라할 정도로 엉성한 따차도 있었다. 따차를 가꾸고 꾸미는 것도 스스로의 몫인 탓에 유난히 세련되게 꾸민 곳도 종종 눈에 띄었다.

잘 꾸며진 따차는 창문에 복고적인 레이스가 장식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작은 화분들이 나란히 창틀에 놓여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따차는 겉모양과 달리 러시아인들에게는 필수적인 공간이었다. 단지 휴식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식을 장만해야 하는 생산적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야채나 토마토 등을 가꾸지 않으면 어디서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우선 부식을 사먹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데다 파는 곳도 그리 많지 않았다. 따차는 어찌 보면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휴식공간이고 생산 공간이며 사유재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또 하나의 자본주의 첨병이었다.

따냐는 마음에 드는 이웃끼리 대정부 비판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다소나마 할 수 있었던 공간이 따차라고 귀띔 했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느끼는 통제감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역시 따차란 얘기였다. 구소련 정부는 따차를 사회 안전판으로 이용하며 대정부 주민불만을 해소토록 했던 것이다.

채린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야로슬라브는 여전히 택시 운전석을 지키고 앉아 따분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창밖만 멀뚱멀뚱 넘어다보고 있었다.

나 선배는 언제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같이 박 인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박 인석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루하게 미끄러져 갔다. 약속 시간이 막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멀리서 오고 있는 상태라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에게 그 만큼의 시간적 아량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자위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바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연이어 시계를 봤다. 15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초침이 한 칸 한 칸 옮겨갈 때마다 피가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발끝으로 도로변에 흩어진 돌 조각을 툭툭 차기도 했고, 손닿는 곳에 선 나무의 가지를 비틀어 보기도 했다. 또 가드레일의 색 바랜 페인트를 손톱으로 토닥거리며 녹이 떨어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나는 색 바랜 붉은 페인트를 손톱 끝으로 긁고 난 뒤 어떤 모양으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오늘의 운세를 점치고 있었다. 손바닥만큼 큰 페인트 비늘이 떨어지면 박 인석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 절반만 한 것이라도 떨어진다면 나는 채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페인트 조각은 손톱크기 이상의 것이 떨어지지 않았다. 점을 쳐보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큰 비늘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박 인석이 나타날 시간이 벌써 지났는데 왜 그가 나타나지 않는 거야

시계가 힘없이 2시를 지났다.

러시아에서 살고난 뒤 그 역시 로스케의 만만디를 배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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