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언젠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술좌석에서였다.

여기에서는 치안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 피습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북한 공작원들의 활동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길을 다닐 때도 3명 이상이 뭉쳐 다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곳은 서울과 다르니까요. 혼자 다니면 북한 측에 의해 납치될 우려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 선배는 택시가 블라디보스토크시내를 벗어나고서도 얼마쯤을 달리다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게 한 다음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든 그의 얼굴색은 카멜레온같이 수시로 변하곤 했다. 그가 전화를 거는 동안 나는 차에서 기다렸지만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큰 탓에 간단한 몇 마디가 들려왔다.

뭐라고. 사무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볼 수 있겠나? 냄새풍기지 말고 조심스럽게 알아 봐

그는 전화가 끝나자 곧바로 택시에 올랐다.

그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자신의 예측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는 확신이 얼굴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 도박을 잔인하게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뭐랍니까?”

“.......”

말이 없었다. 혼자 생각을 씹고 있었다.

 

기바리쏘워지역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길을 따라 40여분을 곧장 달린 뒤에야 나타났다. 널찍하고 평평한 구릉이 배를 드러낸 한가운데 따차지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손톱만한 따차들이 모자이크를 한 듯이 다닥다닥 푸른 구릉에 붙어있었다.

햇살에 비친 따차의 양철지붕이 보석같이 반짝거렸다. 그것들은 너무나 촘촘하게 붙어있어 발 들여놓을 틈도 없어보였다. 하나같이 땅바닥에 달라붙어 지기를 빨고 있었다.

나 선배는 박 인석의 말대로 고속도로에서 따차지대로 들어가는 흙길에 차를 세우게 했다. 그곳에는 기바리쏘워를 가리키는 녹슨 표지판이 숲속에 앙상하게 세워져 있었고 주변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한가로운 러시아의 오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바리쏘워의 하늘은 현란했다. 티끌하나 없는 햇살에 녹아내린 푸른 하늘위로 뭉게구름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얼룩이 구릉지를 멍들게 했다. 햇살의 선명한 광체로 인해 나는 가끔 눈부시다 못해 눈이 머는 것을 느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녹슨 가드레일 앞에 서서 담배를 빼물었다. 시계가 오후 113분을 가리켰다.

박 인석과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큰 도로에는 간간이 그것도 아주 띄엄띄엄 승용차들이 지날 뿐 한가로운 오후만이 앙상하게 누워 있었다.

따차지대 주변에는 녹색의 바람을 일구는 자작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온통 구릉을 뒤덮고 있었다. 바람결이 싱그러웠다.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은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간단한 가재도구를 챙겨 교외에 있는 오두막을 향했다. 여기에는 노동자든 공무원이든 대학 교수든 경찰이든 예외가 없었다. 아예 여성들은 금요일 오전근무가 끝나면 휴일에 접어들었다.

교외에 있는 오두막은 방 한 칸과 거실 겸 주방으로 이루어진 왜소한 공간이었다.

이것이 따차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 언저리에도 따차가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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