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53] 외교‧안보‧경제 치중, 민감한 정치 이슈 손 못 대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모습. 청와대 제공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모습. 청와대 제공

어제(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9년 신년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TV로 생중계된 만큼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출입기자 200여명이 약 1시간 반 가까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는데요.

지난해처럼 기자들이 손을 들면 대통령이 지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올해 다른 점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사회를 봤다는 것이죠. 사회라고 해야 질문자 정하고, 질문 내용에 답하고, 다음 질문자 정하는 순으로, 복잡하거나 큰 수고가 필요하진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통령 맘대로’ 진행한 이번 회견에 고도의 ‘전략’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질문 분야의 ‘배치’입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외교와 안보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분야는 문 대통령이 제일 자신 있는 전공과목입니다.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 긍정평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주로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제재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답방 시점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능수능란하게 답변했습니다. 일부는 추가 질문까지 받아줬습니다.

외교‧안보 다음은 경제 분야였습니다. 경제는 외교‧안보 분야와 달리 대통령 취약과목입니다. 지지율 부정 평가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에 주력 분야입니다. 문 대통령은 경제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외교‧안보 분야 질문이 10개였는데, 단일 분야로 떼어 놓은 경제에만 8개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답변에 어려움을 겪을만한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한 기자는 자신의 소속사를 밝히지 않고 질문을 한데다 질문 과정에서 태도 논란까지 불거지며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르기도 했죠. 이렇다보니 정작 문답공방이 예상됐던 정치 분야는 시간에 쫓겼습니다. 정치 분야 6개 질문 가운데 2개는 외신에서 받았고, 3개는 한꺼번에 몰아 받기와 일괄답변으로 갈음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주어졌는데, ‘김태우‧신재민 폭로’와 관련된 그야말로 ‘조선일보 식’ 질문이었습니다. 사회‧문화 분야는 질문 시간조차 없었고요.

왜 문 대통령은 정치를 경제와 묶지 않고, 맨 마지막 사회‧문화와 붙여 놨을까요? 최근 민감한 정치 이슈에 질문이 쏟아질 것을 대비한 ‘계획된 시나리오’는 아니었을까요? 자신 있는 문제(외교‧안보)부터 풀고, 어려운 문제(경제)는 틀려도 좋다는 심정으로 여유를 갖고, 따분하고 풀기 싫은 문제(정치)는 마지막으로 미뤘다가 종 치면 그냥 내는 시험지처럼 말입니다. 야당과 보수 언론 정치공세에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다분히 계산된 의도가 깔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 대통령은 현직 언론인 발탁 비판 여론과 관련한 질문에 “비판한다면 달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수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 정부는 권언유착이 있었지만, 이번 정부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이날 정치 분야 질문 때 고민정 부대변인이 느닷없이 끼어들었습니다. 중앙일간지 기자들이 질문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그들만 손을 들게 한 뒤 질문 기회를 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목된 언론이 <조선일보>입니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는 회견 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각본 없는 기자회견이라면서 중앙일간지에 질문하게 해주라는 건 언론을 그룹 핑(grouping)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그룹 핑을 짓느냐.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은 첫 질문에 앞서 “기자단 간사부터 질문을 시작한 관행”을 이유로 총괄간사(연합뉴스)에 기회를 줬습니다. 이후에도 대통령의 시선은 주로 맨 앞줄에 머물렀습니다. 맨 앞줄은 이른바 풀(pool)기자 간사들이 앉는 ‘관행적인’ 자리입니다. 뒤에서 열심히 손들기 한 기자들은 허탈과 동시에 일말의 서운함까지 들었다는 푸념입니다.

기자들에게 신년 기자회견은 1년에 한번 뿐인 영광스런 자리입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만큼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제한된 시간이 야속할 따름이죠. 모쪼록 내년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골고루 질문할 수 있는 회견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 더요.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춘추관에서 1기 참모진 인선발표 기자회견을 직접 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춘추관을 찾아 ‘직접’ 기자회견을 하겠노라고. 그런데 지금까지 문 대통령이 춘추관을 찾아 한 기자회견은 지난 해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비공개로 가진 2차 남북정상회담 보고가 전부였습니다. 며칠 전 청와대 2기 참모진 인선 발표도 떠나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했습니다.

춘추관을 찾는 대통령 발걸음이 뜸하니, 기자들의 질문 기회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대변인 정례브리핑인데, 대통령의 직접 발언과 경유해 오는 발언은 차이가 있잖아요. 바라건대요. 대통령께서 평소 춘추관을 찾아 브리핑도 하고, 회견도 하며 소통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신년회견 때 기자들 손들기가 국민들에게 ‘타는 목마름’처럼 간절함을 넘어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회견에 한복을 입고 질문을 시도했는데요. 지목을 받진 못했습니다. 대신, 참신한 아이디어로 각종 뉴스에 보도되는 영광(?)을 안았는데요. 한복을 입은 이유를 묻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신년(新年)’은 우리말로 ‘새해’잖아요. 그래서 입어봤고요. 회견 방식은 미국 백악관식이지만, 대한민국 춘추관 회견은 달라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 기자들이나 외신에 그런 모습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아 참, 제가 하려던 질문을 빠뜨릴 뻔 했네요.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광화문 대통령시대의 핵심인 ‘광화문 집무실’이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입장표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떤 입장인지 궁금하고요. 공약 무산에 따른 대안으로 세종시 제2집무실 설치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인데요. 이에 대한 대통령 의견을 여쭙겠습니다.”

제가 차마 못한 질문에 답은 이제 지역 정치권에서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지역 언론과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권언유착이 아니라 '공조(共助)' 아니겠습니까.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