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안영진 원로 저서 '임진왜란과 조선도공들'을 감상하며

문학평론가 리헌석 충청예술문화협회 회장.
리헌석 문학평론가, 충청예술문화협회 회장.

나라가 걱정입니다.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부국강녕을 기원하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위정자들 역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하고 있음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최근의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에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피상적으로 엄습하는 불안감이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데, 영세한 국민들에게는 졸라맬 허리마저 보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어느 말이 진실인지, 어느 누가 바른 정치인인지,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선택인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아니라, 지금은 삼천리 무중(霧中)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가슴으로, 때로는 찢어지는 가슴 먹먹함으로 힘들어하던 차에 졸수(卒壽, 90세)를 맞은 원로 언론인이자 원로 문인 안영진 선생의 저서 '임진왜란과 조선도공들'을 읽었습니다. 임진왜란 과정에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도공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어 그토록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록에는 선조 임금을 극찬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우매한 왕과 간교한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는 쑥밭이 되고,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힘을 기르지 않은 나라의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참상을 유추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래 놓고도 왕과 대신들은 공훈(功勳)을 다투었다니, 지금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행태와 오버랩(이미지 겹침)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저서에서는 도공(陶工)을 중심으로 밝혔지만, 백성 모두의 아픔이었을 터입니다.

2019년에 졸수를 맞는 문화예술계의 원로 안영진 선생께서 오랜 기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옥고(玉稿)로 역저(力著) '임진왜란과 조선 도공들'을 발간합니다. 선생은 중도일보의 기자로 출발하여, 지방신문 통폐합으로 대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그리고 다시금 중도일보의 논설위원과 주필을 역임하면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일상화한 원로입니다.

언론인 생활이 고단하고 눈물겨울 때가 있었겠지만 마음만은 넉넉하였다고 회고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한국을 '동방의 밝은 등불이었던 코리아'라는 시(詩)로 한국인의 정신을 일깨운 인도의 타고르 시인, 그 대학 부총장을 취재한 것이나, 세기의 성녀로 칭송받은 마더 데레사 수녀를 접견 취재한 일을 가장 큰 행운이라고 밝힙니다. 이와 함께 각국의 정치가와 저명 작가들을 만나 취재한 것도 지방 언론인으로서는 체험하기 힘든 쾌거였을 터입니다.

저서 '임진왜란과 조선 도공들' 역시 충청남도와 ‘구마모토’의 자매결연 현장을 취재하며,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삼평 장인(匠人)과 한국인의 얼을 지키고 있는 심수관 장인(匠人)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을 터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임진왜란에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바로 창씨개명을 한 이삼평 도가(陶家)보다, 끝까지 한국의 성을 지키며 꼿꼿한 자세를 견지한 심수관 도가(陶家)에 집중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이는 어떤 삶이 더 가치로운가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도기(陶器)나 자기(瓷器)를 400여 년 지켜온 그 분들에게 우리는 비판의 언어를 구사하기보다, 따스한 눈길로 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원로 언론인으로서의 가치 기준보다 예술인으로의 동질감에 의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안영진 선생은 한국 예총에서 발간하는 '예술계'의 신인상 문학평론 부문에서 수상하였고, 대전과 세종이 통합되어 있던 충청남도 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같은 지역의 예총 회장을 역임하면서, 예술계의 선구자다운 역할에 충실하였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안영진 선생의 '임진왜란과 조선 도공들'을 다시 정독하며, 나라를 잃고 난세를 살아왔던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말을 인용해 봅니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네 핏줄에는 조선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14대 심수관이 집단 폭행을 받고 온 뒤 13대 심수관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이후 14대 심수관은 "정치란 미리 계산된 사기술' '정치란 ‘너무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기 쉽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동상에 걸리기 쉽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술가들에게 경계가 되는 잠언(箴言)과도 같습니다.

역사는 뒤를 돌아보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기록입니다. 임진왜란에 앞서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어 적정(敵情)을 미리 알아본 것은 참으로 선견지명입니다. 그러나 정사(正使)와 부사(副使)의 의견이 달라 나라는 혼미(昏迷)에 빠집니다. 관리와 동행하였던 관상쟁이들마저 의견이 갈라져서 다투었으니, 그야말로 절통한 일입니다. 미리 대비하였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환난, 수많은 백성들이 아픔을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터, 오늘의 정상배들과 오늘의 지도자에게 '임진왜란(壬辰倭亂) 역사' 정독을 권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이 힘이 없어, 포로로 잡혀갔음에도, 우리의 얼을 도자기로 빚은 장인(匠人) 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분들에 대한 차별과 집단 따돌림을 아픈 마음으로 묵상하며, 이를 저서에 담아 깨우쳐 주신 안영진 선생의 6번째 저작(著作)에 고마운 박수를 보내드릴 따름입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문화 예술인들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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