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칼럼] 3.1운동 100년을 생각한다.

대전 국립현중원 전경
 국립 대전현충원 전경

지난 일요일이다. 집근처에 있는 대전현충원 둘레길을 걸었다.
이곳은 이미 명소가 된지 오래다. 묘역을 둘러싼 구릉이 일품이다. 게다가 현충원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가꾼 탓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 없이 아름답다.
잔잔한 산길을 돌아 징검다리를 건너고 대나무 숲을 지나노라면 이곳이 어느 한적한 마을인가 싶다. 혹은 깊은 산중인지 가늠이 안갈 만큼 포근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산책코스로 삼고 있다. 주말이면 늘 산책객들이 꼬리를 문다. 
일요일 산책을 나선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둘레길 중간쯤 걷다 애국지사 묘역을 만났다.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분들이 이곳에 계실까.
평소와 달리 애국지사묘역으로 발을 돌렸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계셨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보았다. 처음 불러보는 이름이었다. 생소했다.
도리어 생소한 이름을 부르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분들이 얼마나 많은 고초 속에 살았는데. 얼마나 애통하게 죽어갔는데. 이 나라 독립을 위해 얼마나 애절하게 피를 토했는데....
이름 석 자도 기억하지 못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걸음을 재촉하며 다시 한분 한분의 묘석 앞에서 이름을 불러 드렸다.
한글학자로 고초를 겪었던 외솔 최현배 선생도 계셨다. 3.1만세운동에 나섰다 옥고를 치룬 화가 도상봉 선생도 이곳에 계셨다. 몇몇 분들은 이름이 익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국지사들은 이름조차 낯설었다.

‘탄압과 핍박
민족의 자존심 짓밟힐 때
피멍울진 분노를 어이 참을 수 있었으랴.
내 생명은 조국의 것
이 몸 죽어 바치노니
조국광복 밝히리라.’
어느 애국지사의 비석을 쓰다듬으며 모진 한기를 느꼈다.

그렇게 이름 부르기를 4시간. 다리가 저려왔다. 하지만 보람이 있었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이분들의 이름이라도 불러주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제안하고 싶어졌다. 현충원과 가까이 있는 주민들이 먼저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분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갔으면 좋겠다. 나아가 대전 시민들이 주말마다 이곳에 와서 이분들의 이름 석 자를 불러주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애국지사들을 곁에 모시고 살면서 근처에도 가보지 않는 것은 민망하다. 멀리 있다면 모르지만 이웃하고 있는 주민들부터....
애국지사들도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보람이 있지 않을까.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 그들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아픔이 다가왔을 때 헌신하겠는가. 숱한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오늘 이 나라가 존재하는 것은 그 값진 희생의 덕이리라.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1919년 3월 1일.
금년은 3.1독립운동이 펼쳐진지 100년이 되는 해다.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한창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진력을 기울이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래도 꼭 해야 할 일이기에 다행스럽다.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은 더 없어야 한다. 일제에 나라를 판 이들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는 모습도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왜곡된 역사의 물길을 바로잡는 것은 더 늦추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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