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어느 ‘정당제 민주주의자’의 제언
靑은 실용을 취하고 黨이 이념을 끌어가야

10일 문재인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한다. 이번 회견은 '신년 회견'의 의미도 있지만 시기상 임기초반을 끝내고 '중반의 시작점을 여는 회견'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대통령 임기가 5년, 즉 60개월인데 1월 9일이 딱 21개월이 시작되는 날이다. 

나는 '임기중반의 시작점'과 관련하여 기자회견과 거의 같은 시점에 이루어지고 있는 최근 집권세력내의 변화흐름에 주목한다. 그 주목의 포인트 중 하나는 '알릴레오' 유튜브를 통한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등장이다.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는 문대통령의 열성지지자들이 개최한 '문파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서의 '대통령을 구하자'는 한 목소리와 함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론에 공표된 대로 비서실장 교체 등 청와대 2기의 출범이 예정되어 있다는 포인트다. 이 흐름에 더불어민주당은 안 보인다. 오히려 대표가 빈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집권 세력 내 변화를 어떻게 봐야할까? 솔직히 짚고 넘어가보자. 대통령을 구해야 할 정도로 위기상황일까? 초기 청와대를 지킨 핵심들이 지켜내기엔 도저히 힘들기에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된 걸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홍카콜라'가 뜨고 유튜브 전쟁에서 보수야당이 앞서가니까 정치를 하기 싫은데도 연예인 인기수준인 '유 작가'가 어떻게라도 구원투수로 나와야할 만큼 위기일까? 현 집권세력에 썩 우호적인 편은 아닌 내가 보더라도 그 정도까지의 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왜 대통령의 기자회견 전후로 대통령 핵심 지지자들의 의기투합과 외부인사의 본격적 정치행보, 그리고 대통령비서실의 변화가 동시다발로 진행될까? 그것은 지금이 향후 집권연장을 위한 프레임(Frame)을 잡아나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집권중반을 맞는 요즘 대통령에겐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문 등 기대했던 대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다. 경제문제도 녹록치 않다. 최저임금문제도 다소 조정이 불가피해보이고 이에 대한 노동계 등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다. 

김태우, 신재민 두 공무원의 폭로가 도덕성에 상처를 내고 “이 정권은 더하네” 소리까지 들을 지경이다. 지지율은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추월하는 데드크로스 현상을 맞이했다. 여기에 다소 우호적 성향의 두 야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무기로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런데 이런 집권초반기 마지막 시점인 최근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정적 모습이 그간 집권세력이 내내 쌓은 정국운영에 유리한 플러스 효과를 마이너스로 전환시켜놓았을까? 다소의 상처는 있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적폐청산의 명분과 남북평화국면에의 기대는 여전히 강하다.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분배중심의 경제정책은 한국경제 성장성 악화에 눌려 밀리고 있지만, 개혁과 평화의 프레임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리고 그 프레임의 중심축은 국민 인식상 상당 부분 왼쪽으로 이동되었다. 

계속 대통령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작년 12월 YTN조사에 따르면 박근혜전대통령 불구속재판에 대해 찬성이 33.2%인 반면 반대는 61.5%(매우반대 47.8%)로 2배가 높다. 역시 동 시점 리얼미터 조사에 의하면 김정은 답방 환영여론이 61.3%에 비해 반대여론은 31.3%로 낮다. 

불과 몇 년 전 과거 정부에서의 국민인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국민인식상의 중심축이 이동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이다.

특히 소위 '중도층'의 인식이 왼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며, 이는 정통적 진보에의 결합지점과는 가까워진 반면 정통적 보수에의 결합지점과는 다소 멀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집권세력은 진보와 중도의 스펙트럼을 넓게 바라보며 쓸 수 있는 전략적 '카드'가 많고 보수야당은 '카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중심축 이동에 따른 변화노력도 수반해야 한다.

정권교체 후 프레임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중도층의 인식이 변화했지만, 현 정부의 잘못이 계속되고 이것이 누적되면 중도층의 마음은 흔들릴 수도 있다. 집권 중반기, 특히 후반기로 가면서 흔들림은 당연히 더욱 커진다. 

이들 ‘중도층’을 공략, 지지기반을 넓히는 것이 집권중반기 여야간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두 사람의 전략이 유명하다. 

미국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의 전략가인 딕 모리스(Dick Morris)는 진보도 보수도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제3의 생활적 이슈를 제기하고 이것으로 타깃층을 공략하는 방법을 얘기한다. 그는 이를 ‘트라이앵글(Triangle)전략’이라고 불렀다. 

반면 공화당 ‘아들 부시’ 대통령의 전략가 칼 로브(Karl Rove)는 보수의 가치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보수주의자 중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거꾸로 민주당이라면 진보의 가치를 세워 펼치는 전략이겠다. 그의 포부는 두 번의 대선 승리를 넘어 1896년부터 1932년까지 지속된 공화당 전성시대를 꿈꾸며 공화당의 30년 치세를 열고자 했다. 물론 그 꿈은 8년 만에 끝났지만. 비슷한 30년 이야기를 이해찬 민주당대표가 말했다.

전략의 측면에서 보면 집권중반기를 맞는 현 집권세력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집권초반기를 돌아보면 칼로브의 전략과 유사하다. 가치를 분명히 설정하고 이념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친노동자 정책, 분배중심정책, 그리고 남북화해모드를 조성했다. 그런데 이 작업은 시민단체의 지원 하에 철저히 청와대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속에 더불어민주당은 없었다. 30년 집권을 얘기한 ‘강성 이해찬’ 대표마저도 뚜렷한 존재감이 없고 때론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비쳐졌을 것이고, 이러한 불만이  '문파 라이브 에이드'에서 빈축으로 나타났다.

당이 모습을 보일 때다. 최근 몇몇 정치인과 대화하며 자연스레 정치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민주당이 가야할 방향도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 위의 내용을 포함하여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다.

1. 문재인 정부들어서 프레임의 중심축이 많이 이동했다. 

2. 중도층도 많이 변화하고 이들을 지켜 내거나 끌어오기엔 야당은 너무 약했다. 

3. 최근 정부의 몇 가지 잘못에 의해 국민들, 특히 중도층은 점점 더 혼란스럽다. 이는 대통령의 계속된 국정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난다. 

4. 야당이 늦게나마 인적쇄신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이념적으론 홍카콜라가 우측에 나타나 중심축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5. 그런데 집권여당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만 바라본다. 

6. 집권중반기를 맞는 청와대는 어차피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의 변화와 함께 가급적 이념지향적 모습에서 탈피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 내엔 계속 프레임의 축을 왼쪽에 유지하려는 욕망이 있고 전략적으로 그럴 필요도 있다. 유시민이 한다고 나왔고, 문파가 움직였다.

8. 집권세력이 향후 프레임을 끌어가려는 의지를 보이며 진영정치, 이념정치가 불붙는다. 그런데 그 역할은 사실 당에서 해줘야 한다. 

9. 그래서 청와대와 당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당은 보다 이념을, 청와대는 보다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이슈, 즉 실용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10. 집권후반기가 도래하면 대통령 레임덕과 함께 당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가치로 단단한 정당의 흔들림은 미풍에 그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히 이 당의 프레임전략을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정당의 존재감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정부의 문제도 역시 청와대가 모든 것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 당은 없었다. 국정농단사건발생 후 당은 무너졌다. 과거와는 다르다는 명분과 시대흐름으로 등장한 지금의 정부는 달라야 한다. 당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어느 당을 지지하고 반대하기에 앞서 나는 ‘정당제 민주주의’ 자체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교과서가 아닌 현실정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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