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
정승열 법무사

타이베이 시내에서 대만총통부와 국립대만의과대학이 있는 번화가에 있는 2.28.화평기념공원(2.28.和平記念公園; 228 Peace Park)은 1947년 2월 28일 주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기념공원이다.

MRT 단수이행(붉은색)의 다이타이위엔역(台大醫院站) 1번 출구를 나서면 기념공원 정문이 있는데, 이곳은 원래 사찰이 있었으나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후 대만을 식민지배하기 시작한 일본이 1908년 사찰을 철거하고 대만 최초의 서양식 공원 타이호구신공원(台北新公園)을 조성했던 곳이다.

공원에서 도로 건너편에는 일본이 1895년 청일전쟁 승리 이후 1945년까지 대만을 식민통치하던 일본총독부 건물이 있는데, 1919년 르네상스식 5층 건물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만총통부로 사용되고 있다. 또, 국립의과대학병원 건물도 같은 르네상스식 건물인데, 일제의 잔재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1-1. 대만총통부
1-1. 대만총통부
1-2. 대만의과대학
1-2. 대만의과대학

 

2. 공원 입구
2. 공원 입구
2-1. 기념탑
2-1. 기념탑
2-3. 조형물
2-3. 조형물

대만은 1624년부터 1945년까지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아온 섬으로서 원주민들은 식민지배에 대한 반감이 높았는데, 일제가 물러난 뒤 진주한 국민당정부군도 점령군처럼 군림하여 대만인들의 반감을 샀다. 즉,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한 일본이 대만에서 철수하면서 장개석 국민당정부에게 대만의 지배권을 넘겼는데, 대만에 진주한 국민당정부군은 마치 점령군처럼 군림하면서 원주민들의 커다란 저항을 받았다.  

즉, 중국 대륙에서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역 근처에서 밀수 담배를 팔던 원주민 노파를 국민당정부의 단속반원이 구타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을 지켜보던 주민들이 항의하자 경찰이 군중에게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가 촉발되었다.

이튿날인 2월 28일 타이베이시 전역은 파업․ 철시를 하고 시위대는 시가지를 휩쓸었으며, 3월 1일 이후 시위는 대만 섬 전체로 확대되었다. 이에 놀란 국민당정부는 3월 8일 대만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2개 사단의 진압군을 투입하여 무차별 진압에 나서 대대적인 살육을 벌였다. 이 사태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현지 정치지도자들과 경제인, 언론인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2.28. 사건은 대만으로 이주해온 국민당정부 대부분이 자존심 강한 한족(漢族)으로서 대만 원주민을 깔본 결과로서 1947년 3월에 선포한 계엄령은 1949년 국민당정부가 대륙에서 쪽겨난 이후 1987년 7월까지 무려 40년 동안 독재정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대륙에서 건너온 한족은 14%이고, 대만인이 84%, 토착인은 2%라고 했는데, 국민당정부도 일시 수도를 옮겨왔을 뿐 곧 대륙을 회복하여 되돌아 갈 것으로 굳게 믿고 있던 중이었다. 

2-4. 희생자명단
2-4. 희생자명단
2-5. 추모편지들
2-5. 추모편지들
3. 원주민박물관
3. 원주민박물관
3-1. 전시물
3-1. 전시물

대만에서는 2·28.사태를 ‘2.28.대학살’, ‘2·28봉기’, ‘2·28 사변’ 등으로도 불렀지만,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는 이 사건에 대하여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될 정도였다. 그러나 1988년 리덩후이 총통이 집권하면서 비로소 '2·28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시작되어 4년간에 걸친 조사 결과, 약 18,000~28,000명이 희생되었다고 발표했다.

리덩후이 총통은 1995년 2월 28일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가족에게 공식 사과하면서 2월 28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탑과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그리고 주민들이 처음 대규모로 궐기했던 이곳에 기념탑과 기념관을 건립한 것인데, 우리의 제주도 4.3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비슷한 상황이다.  
 

4. 연못과 팔각정
4. 연못과 팔각정

입장료가 무료인 기념공원에 들어서면 커다란 열대수가 무성한데, 공원 한 가운데에는 3개의 거대한 정육면체 구조물과 그 위에 층층이 올라앉은 2개의 정사면체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첨탑이 높이 솟은 2.28 기념탑이 있다.

기념탑 앞에는 2.28. 평화 기념탑에 대한 건립 기록이 동판에 새겨있고, 왼쪽 담장 옆에는 2. 28. 시위사태에서 희생된 이들의 명단이 벽에 새겨 있고, 또 그 앞에는 당시의 모습을 사진과 조형물로 전시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리본과 비슷한 리본들과 추모의 쪽지들을 가득 걸어둔 전시물들이 애처롭게 보인다.

오른쪽에는 분수대와 팔각정이 있는데, 네모진 연못 한가운데에는 북경의 원구단 비슷한 건물을 지어놓고 다리를 건너 드나들게 하고, 연못의 네 구석에 각각  팔각정을 세운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 추모 기념탑 뒤편으로는 야외 음악무대가 있고, 공원 입구 왼편에는 국립 대만박물관이 있다.

중국대륙의 유물들을 전시한 국립고궁박물관이 있는데도 대만박물관을 지어서 대만의 자연사와 원주민들의 문화를 잘 알 수 있게 한 것도 아마 2.28. 사태로 희생된 원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 같은데, 이곳은 시민들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2.28.기념공원은 매일 아침 중국전통의 태극무와 요가 등을 운동하는 시민들로 넘쳐나고, 낮에는 휴식을 취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이는 시민공원이 되었다.
 
 2.28.사건에 관해서는 1989년 허우 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이 제작하고 양조위, 신수분, 진송용 등이 출연한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에서 잘 묘사되었는데, ‘비정한 도시’라고 번역되는 영화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발표된 때부터 1947년 2월 2.28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4년 동안 산간 오지마을에서 살고 있는 임씨(林氏) 일가의 장남 문웅(진송용), 둘째 문량(고첩), 대륙에서 폐인이 되어 귀향한 셋째 문량(고첩), 청각장애인 넷째 문청(양조위) 등 네 아들을 통하여 대만의 격동과 혼란을 잘 그렸다. 영화는 1989년 제46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10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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