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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은 ‘감사’다
[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은 ‘감사’다
  • 박길수 기자
  • 승인 2019.01.07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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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우리는 자신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불안을 느끼며 산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를 싫어하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무엇을 잘못 하였나’, ‘나만 외톨이 되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맞는 선택일까’, …… 자신을 괴롭히는 불안이 엄습해 온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특히 학생들은 ‘내가 자는 시간에 점수가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삼수 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잠을 자도 되나’,…… 특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 시간대일수록 불안은 더 고조되는 경우가 있다.

나 혼자만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또한 불안이란 감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왔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불안이 찾아오는 빈도는 차이가 있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안이 오면 심장박동이 심하게 뛰거나 혹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옮기는데 불안이 가라앉힌 다음에는 대부분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헤어진 애인의 sns를 드려다 보거나, 자신이 궁금했던 정보를 찾기 위해서 인터넷 검색을 밤새면서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더 심하게는 그 불안을 느끼는 것이 두려워 일중독, 게임중독, 쇼핑중독 등 다양한 중독 현상으로 나타낸다.

특히,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거나 사춘기 학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엄마의 불안이 아이들에게 잔소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부모가 부모로부터(원가족) 받고 싶었던 것을 자녀에게 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녀에게 ‘엄마는 어렸을 때 이런 대접 못 받았는데, 너는 이렇게 대접 받으면서도 왜 이리 불만이냐’ 식의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 즉 자신의 결핍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또한 불안의 형태이라고 본다.

어떤 책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억압, 우울증과 심신의 질병을 통하여 어떤 의미로는 그녀 자신의 일부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자신이 적대적이고 이질적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기 위하여 그녀 자신의 마음과 신체를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왜곡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자신의 불안을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중독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어버리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반복이 되면서 중독은 고착이 되어 버린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고착의 대상이 곧 ‘우상’이 된다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우상이란 하나의 절대성으로 높이려는 모든 것, 즉 무한한 수준으로 고양된 유한성, 영구적이라고 주어진 일시적인 형태를 말한다. 자신 안의 우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불안의 강도가 높았을 때 자신의 결핍을 더 강하게 표출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아. 불안이 또 찾아왔구나’라고 편하게 인정하면서 자신과 대화를 해보면서 ‘무엇 때문에 불안하니’라고 자문을 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불안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불편한 감정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지혜로움을 갖게 한다.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감사’가 답이다. 감사한 일들을 찾아서 기록해 보시면 불안 정도가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서 하늘의 별동별처럼 ‘감사’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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