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정치 톺아보기] 대전발전을 위한 제언2

“당신의 비이올린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그토록 놀라운 선율을 내는 것이오?”라는 사제의 질문에 “그 속에는 악마가 숨어 있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그를 주제로 한 뮤지컬이 대전 예술의 전당(이하 예당) 앙상블홀에서 5일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채 막을 내렸다.

관전하기 전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우선은 파가니니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이미 2014년 한국에 영화로 상영되어 3만 6808명의 관객수를 기록한  흥행 참패작었는데 '왜 굳이 파가니니를 무대에 올렸을까'라는 의문. 그런데 이는 140분 공연동안 아래 의문과 함께 말끔히 사라졌다.

'이 악마의 삶과 음악을 예당 기획자들은 어떻게 풀어갈까?'라는 의문도 당연히 든다. 

영화는 7살 때 공개무대에서 캄파넬라변주곡(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b단조 Op.7)을 연주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을 프로모터와 언론이 결탁한 '악마마케팅'으로 풀면서 여자와 술, 도박에 빠진 한 쾌락주의자의 몰락하는 삶으로 스토리화하고 당시의 교회권력과 도덕률은 그런 그를 사망 후 36년만에야 고향 제네바의 교회에 안장하는 비운의 음악가로 그린다. 즉 영화는 정통적인 '악설'을 중심으로 파가니니를 묘사한다. 

그러나 뮤지컬은 그의 사후 교회법정에서 선민을 현혹시키는 악마에의 벌함을 주장하는 사제와 오로지 예술을 사랑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했던 한 인간의 순수함을 설파하는 파가니니 아들의 열정적 변론과 함께 이야기를 전개한다. 

기획의 발상이 놀랍다. 그래도 영화의 줄거리가 신경 쓰였을 텐데.

관련 글을 아무리 찾아봐도 새로운 접근, 즉 교회법정으로 중심을 잡고 파가니니와 여인(샬롯), 사제, 프로모터의 이야기로 농축한 접근은 실로 대단한 창작력이다.

풀어야 할 더 큰 문제가 있다.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 평가받는 파가니니다. 활이 아닌 나뭇가지로 연주하고, 현을 한두 개만 걸고 연주한다는 '그의 음악세계를 뮤지컬 주연은 현장연주로 어떻게 소화해낼까?'의 문제다. 그런데 즉답이 자연스레 나온다. 

파가니니 역을 맡은 KoN의 발굴은 엄청난 성과다. 연주로 찬사를 받는 바이올린니스트는 제법 있다. 그런데 완벽하진 않지만 춤과 노래와 연기가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인은 거의 없다. 영화 속 파가니니( 데이빗개럿) 뺨치는 KoN의 모습은 극찬을 아낄 수 없다. 특히 마지막 연주, 캄파넬라와 카프리스24(Caprice No.24)가 매끄럽게 연결된 음악 편곡도 놀랍고, KoN의 실제연주상황은 관객의 마음을 확 끌어당긴다.

이쯤 되면 첫 번째 의문이 자연스레 해소된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기획과 제작에서의 실험정신과 도전의식이 돋보인다. 파가니니, 아니 더 나아가 한 예술가의 삶을 예술장르로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어렵지만 실험적인 노력을 예술계의 누군가는 해야 한다. 4만도 안되는 영화 관객, 그 정량적 수치에 막혀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평범한 작품만 나온다. 비록 공동제작이지만 이런 일을 예당이 도전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뮤지컬 파가니니는 지역예술의 한계를 넘어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에 첫발을 내딛은 의미 있는 쾌거이다. 지역의 공연기획 역량이 서울의 우수한 제작을 만나 완성된 작품인 것이다. 

늘 서울의 공연콘텐츠가 지방순회공연차 대전으로 내려오는 양상과는 달리 대전발 제작 뮤지컬 초연이 서울로 올라가 세종문화회관에서의 50회 장기공연을 이루게 되는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선 지역민들의 세금이 왜 파가니니와 같은 지역과 상관없는 인물, 그리고 지역과 상관없는 단체와의 협업 예산으로 쓰이느냐는 비판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론 있을 수 있는 지적이겠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지역예술기획의 역량강화, 우수공연 콘텐츠를 접하게 되는 지역 관객 그리고 앞으로 쌓일 역량을 통해 지역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드는 측면에서 볼 때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이다.

게다가 대전방문의 해를 앞두고 서울의 관객을 끌어내리고 SNS로 대전을 알아보는 움직임이 활발했다고 하니 브랜드 쌓기를 위한 대전 컨텐츠의 잠재력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덤일 수 있겠다.

공연예술과 문화마케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인들과 교류하며 '행정의 관점에서 예술을 보아선 안된다'는 생각, '예술은 예술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어렵겠지만 적극적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줄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이런 시각에서 공연예술 관련 몇 가지 제언을 붙이고자 한다.

첫째, 정책으로 문화 복지와 세계적 아티스트 혹은 브랜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일반 시민에게, 소외된 사람들에게 문화공연을 무료로  전개하는 지원정책과 독일의 피나바우쉬같은 세계적 무용수를 키워내는 것은 어쩌면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하게 한 작품을 대표브랜드로 제작, 육성하겠다는 것과 그 작품을 시민 누구에게나 보여주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강영환 정치평론가
강영환 정치평론가

둘째, 대전방문의 해를 맞는 대전으로선 무턱대고 지역 고유 콘텐츠를 만들고 이의 정량적 성과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공연관람문화, 지역단체의 역량강화, 예당 자체기획의 확대를 통해 대전을 넘어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창조적인 공연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문화예술 정책의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지역의 콘텐츠만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처음 시도이고 관객  유료객석점유율을 고려,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지역의 콘텐츠는 제작사와 '인핸스먼트 방식'으로 처음 해보고 제작의 노하우를 쌓은 후 추후에 추진하는 전략이 비람직하고, 이점에서 뮤지컬 파가니니의 공동제작은 좋은 선택이었다.

셋째, 브랜드 작품을 만들 경우 제작방식은 필히 민간전문가가 담당해야한다. 여수세계엑스포 주제가와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생각해보면 명확해지는 지점이다. 윤상과 아이유가 여수엑스포의 주제가를 만들었으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조합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임에도 실패했다. 

문화콘텐츠 구매, 소비의 핵심은 매력에 있다. 그러나 지자체, 조직위 등 공적구조에서 만들게 될 경우 ‘만들려는 의지’ 자체가 소비 매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경향이 크다.

넷째, 예당은 고급진 아트플랫폼 역할로 포지셔닝되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장르별 전용극장, 제작극장, 실험극장 등 세부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시장 및 인프라가 협소한 우리나라 실정엔 어려움이 크다. 특히 질, 양에 있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예술계에는 불가능한 환상이다. 

우버와 에어비엔비가 직접 차량운전, 숙박영업을 안 한다고 뭐라고 하지않듯, 대전예당은 좋은 작품이 계속 공연되고 그를 통한 예술계, 기획계, 매니아층, 일반시민에게 ‘좋은 극장’으로, ‘믿고 보는 예당’으로 기억되는 전략이 맞다. 

따라서 직접 만들겠다고 진 빼지 말고 만드는 건 역량 있는 민간제작사에서 만들고, 대전예당의 네트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을 활용, 작품 마케팅과 홍보, 브랜딩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 전략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뮤지컬 파가니니 공연장에서 예당관계자분들에게 '첫 기획으로, 초연으로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앞으로가 시작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진심이다. 

여기까진 잘 왔다. 어쩌면 절반의 성공이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서울을 넘어 중국까지 가고자 하는 길, 반드시 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파가니니와 같은 성공사례들이 앞으로도 더 쌓이고 그것이 지역고유의 것과 시너지를 이루고, 그 힘이 모여 모여 대전의 도시 브랜드에 더 좋은 알맹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해낼 수 있겠다.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자신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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