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수이 전경
1. 단수이 전경

타이완의 최북단은 단수이(淡水)인데, 이곳은 섬 내륙에서 흘러서 남중국해로 빠지는 단수이 강의 하류이자 남중국해와 합류하는 지점이어서 일찍부터 대륙의 상인들이 강을 따라 섬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또 1590년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섬을 처음 발견한 뒤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이라고 불렀는데, 1624년 네덜란드가 타이완의 남부 타이난(臺南)을 무력으로 점령하자 1626년 에스파냐도 타이완의 북부 단수이 지역을 점령하고 요새 산 도밍고(Fort San Domingo)를 구축했던 지역이다.

그러나 1642년 네덜란드가 에스파냐 세력을 몰아내고 동인도 회사를 세우고, 총독이 타이완을 통치했다. 그리고 이곳을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통하는 무역거점으로 삼았다(산 도밍고에 관하여는 2018.12.17. 대만여행 참조).

2. 구시가지 광장
2. 구시가지 광장
2-1. 항구와 방파제
2-1. 항구와 방파제

 1839년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청과 남경조약을 맺었지만 청이 미온적으로 대하자 1858년 청의 관리가 영국선박에 올라가 영국국기를 밟았다는 트집을 잡고 애로호사건(Arrow; 제2차 아편전쟁)을 벌이더니 톈진조약을 맺고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있던 단수이의 홍마오청(紅毛城)을 영사관으로 삼았다.

이후 청의 쇠약함을 간파한 서양의 다른 나라들이 잇달아 단수이에 몰려와서 일약 국제항구가 되었으며, 외국인들이 집단거주지를 형성한 곳이 단수이 구시가지(淡水老街)이다.

 

2-2. 어인부두
2-2. 어인부두
2-3. 어인부두 현수교
2-3. 어인부두 현수교

수도 타이베이에서 북쪽으로 약 18㎞ 떨어진 단수이는 행정구역상 신베이시 단수이구(新北市 淡水區)이지만, 타이베이에서 MRT 2호선(붉은색)을 타고 약 30분쯤 가면 단수이종점이다.

거대한 지하철역을 나서면 바로 옆에 단수이 강이 있는데, 지하철역과 강변 사이에는 이 일대는  단수이의 구시가지라는 ‘담수노가광장(淡水老街廣場)’이라는 큼지막한 동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중정로(中正路)는 항구 도시답게 해산물을 비롯한 맛집이 즐비한데,  우리가족도 앱을 켜고 시장 통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서 점심을 먹었다.

도로 오른쪽의 비탈길에는 에스파냐,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이 사용하던 건물과 유적들이 많고, 단수이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강변은 물빛이 아름다워서 금색수안(金色水岸)이라고 하는데, 바다와 만나는 하류까지 약2㎞가량 내려가면 단수이 강 선착장이고, 강으로 돌출된 선착장에서부터 하류에 있는 작은 섬 저도(楮島)까지 일직선으로 방조제를 만들어서 아주 크게 확장한 부두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3. 홍모이성
3. 홍모이성
3-1. 영사재판정
3-1. 영사재판정

조금 더 내려가면 어항 어인마두(漁人碼頭: Fishmans Wharf)인데, 이곳은 네덜란드 총독과 영국 영사관이던 홍모이성에서 방조제의 아치형 다리가 시작되는 어항으로 나가는 교차점이다.

어인마두는 주차장, 카페, 음식점 등이 있는 유원지로서 거대한 아치형 현수교를 건너서  방조제로 나갈 수 있다. 정박한 배들이 바다로 나가는데 편리하도록 높다란 아치형으로 만든 다리는 단수이 강 상하를 바라보기 좋은 포토 존이 되는데, 현수교를 건넌 방조제에도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가득하다.

시민들은 물론 단수이를 찾는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아름다운 단수이 강변의 저녁노을 감상하며 즐기는데, 인천에서 타이완으로 가는 비행기 창문을 내다보면서 우연히 스냅한 사진이 공교롭게도 단수이의 어인마두 일대여서 매우 놀랐다. 

3-2. 무역선 모형
3-2. 무역선 모형

단수이 구시가지의 끄트머리인 어인마두 산 쪽에는 홍마오청이 있는데, 이곳은 1629년 에스파냐인들이 처음 단수이를 점령한 뒤 설치한 산 도밍고 요새로서 1642년 네덜란드인들이 빼앗은 뒤 튼튼하게 새로 성을 쌓았다.

네덜란드는 이곳에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총독이 타이완을 통치했는데, 당시 주민들은 네덜란드인을 ‘붉은 털이 많은 사람들’이라 하여 홍모인(紅毛人)이라고 불렀으며, 동인도회사 총독이 사는 성이라 하여 ‘홍마오청’이라고 했다.

그러나 홍마오청은 아편전쟁 후 영국이 차지하여 1867년부터 1972년까지 영국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 홍마오청은 에스파냐,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식민통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1980년 타이완 정부가 인수하여 1급 국가사적지로 지정했다. 홍마오청의 공식명칭은 신베이시립 단수이고적박물관이고, 입장료는 80대만달라(한화 약3200원)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 옆길이 입구이고, 정면 길은 출구로 이용하고 있다. 산 위에는 두 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있는데, 왼편의 붉은 건물이 홍마오청이고, 오른쪽 건물이 영국 영사관저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건물 앞에는 여러 나라 국기가 세워져 있는데, 이 깃발들은 홍마오청을 소유했던 국가들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다.

단수이 강과 동중국해가 잘 바라보이는 이곳에는 영국인들이 설치했던 대포들이 줄지어 있고, 건물은 에스파냐가 최초로 건축한 이후 네덜란드가, 그리고 1867년부터는 영국영사관으로 사용된 역사로서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영사관 건물에는 영국인들이 영사재판을 하던 법정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3-3. 영국 제독
3-3. 영국 제독

에스파냐와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점령하고 있을 때, 대륙에서는 만주의 여진족이 세력을 키우더니 1616년에 누르하치(태조)가 만주를 통일하고 후금(後金)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 태종은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1644년 명 제국을 멸망시켰다.

이때 한족 정성공(鄭成功)이 청을 반대하고 명의 황손 당왕 주율건(朱聿鍵)을 황제로 옹립하고 명조 복위운동을 전개하자, 당왕은 정성공에게 명 황실의 성씨인 주씨(朱氏)를 하사하여 국성야(國姓爺)라고 불렀다.  

대만해협에서 무역과 해적생활로 큰돈을 벌었던 아버지 정지룡(鄭芝龍)과 일본인 다가와마츠(田川) 사이에서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태어난 정성공을 네덜란드인들은 국성야 즉, 콕싱가(Koxinga, Coxinga)라고 불렀는데, 철기병으로 무장한 정성공부대는 공포의 대상일 정도로 잔인했다.

1682년 정성공이 이들을 몰아냄으로서 네덜란드의 타이완 통치는 38년 만에 끝났으나, 정성공의 명황실은 1683년 정성공의 부하였던 시랑이 지휘하는 청군에 멸망했다. 타이완에 한족 정권의 뿌리를 내리는데 크게 공헌한 정성공은 현재까지 역사적 인물로 존경하며, 신격화하여 숭배되고 있다.

그 후 청은 주민의 저항을 염려하며 이들을 본토로 이주시키고 빈 섬으로 두자는 공도정책(空島政策)과 국방상 섬의 지배를 강화하자는 의견으로 나눠지다가 아편전쟁이후 외국선박의 항해가 빈번해지자 1860년 타이완을 개항하게 되었다. 

4. 진리대학 전경
4. 진리대학 전경
4-1. 진리대학
4-1. 진리대학
4-2. 진리대학 전시실
4-2. 진리대학 전시실

홍마오성 정문에서 오른쪽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면 홍마오성 담장과 붙은 예배당이 있고, 그 바로 위에 1882년 캐나다 선교사들이 세운 옥스퍼드 대학이 있다. 이 일대는 서양인들이 집단거주지였는데, 예배당과 진리대학, 그 옆의 목사관 등이 모두 진리대학의 소유인지, 예배당 앞에 ‘진리대학(眞理大學)’이라는 동판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있다.

진리대학으로 들어가면 고목이 울창한 숲과 정원, 연못이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마치 아름다운 개인정원에 들어온 것 같은데, 왼편에는 초기 선교사들이 세운 옥스퍼드대학의 건물양식이 매우 이색적이다.

타이완 최초의 서구식 대학인 건물의 전면에는 ‘OXFORD’라는 영문자가 현판처럼 새겨있고, 그 건물 안에는 각 방마다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와 사진을 많이 전시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은 1999년 진리대학으로 변경되었는데, 예배당 앞에서 골목을 사이로 한 오른편에 목사관이 있고, 목사관과 붙은 위쪽 건물이 학생들의 기숙사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인 목사관은 카페로 바뀌었다. 대학을 지나 맨 위에는 영국영사가 거주하던 관서터는 소백궁(小白宮)이라고 한다. 

이처럼 단수이에서도 서양문물을 많이 볼 수 있는 이곳은 2007년에 제작된 대만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서 담강고등학교(淡江高級中學)에서부터 진리대학을 따라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홍모성은 타이베이의 지나간 역사를 말해 주는데, 인천역 앞 차이나타운에서 청의 조계지와 일본조계지가 있는 느낌과 비슷해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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