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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접고 복싱 택한 보문고 수재
UC버클리 접고 복싱 택한 보문고 수재
  • 김학용
  • 승인 2018.12.21 15: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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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

또 입시철이다. ‘불수능’이라는 올해에도 만점자가 9명이나 나왔다. 언론들은 그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등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해마다 이런 수재들이 나오고, 그들은 법대에 들어가 고시에 합격하거나 의대를 나와 의사의 길을 가기도 한다. 요즘은 국내 대학이 아니라 처음부터 미국의 하버드나 UC버클리 같은 유명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고시든 유학이든 많은 학생 학부모들의 바람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문고 출신 안석영 군(27)도 그런 수재 대열에 낄 만한 학생이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내신 1등급으로 졸업한 그는 서울대에 충분히 입학할 만한 실력이었고 집에선 그가 미국의 유명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다. 이 때문에 한때 UC버클리 입학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안 군 자신이 마음을 바꾸면서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는 지금 경기도 용인에서 복싱체육관에 다니고 있다. 그의 꿈은 복싱 세계챔피언이다. 복싱선수가 되기 위해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그는 2년 전, 거주지를 대전(서구 내동)에서 수도권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동탄에 정착했다가 얼마 전 용인으로 이사했다. 애초에는 대전에서 체육관을 다녔으나 복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수도권으로 가야 했다.

고교 때, 이웃 돕기 위해 주식으로 5000만원 벌기도

고교 졸업 후 그의 삶은 모두 복싱에 맞춰져 있다. 하루 생활도 보통 젊은이들과는 좀 다르다. 그는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새벽운동을 한 뒤 잠깐 눈을 붙였다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취침 시간을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로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성장 호르몬이 분비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싱선수로서 최고의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그의 복싱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철저한 분석과 연구다. 그는 유명한 선수들의 시합 장면 영상을 보고 또 본다. 어떤 보폭과 스텝 스타일이 유리한지, 주먹의 각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을 수백 번씩 보면서 연구했다고 한다. 이제는 웬만한 시합 장면은 처음 몇 분만 보더라도 어느 선수가 이길지 알아 맞출 정도까지 되었다.

그는 오전에는 체육관에 나가고 오후에는 일을 한다. 그가 하는 일은 번역이다. 출판사에 취직해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영어 일어 스페인어를 한다. 특히 영어는 토플이 만점 가까운 실력이다. 소설류는 물론 경제 경영 분야 서적도 번역한다. 경제에도 밝은 편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이미 주식에도 솜씨를 발휘했다. 고등학생이 주식을 연구해서 5000만 원을 벌었다. 수능 만점자 못지않은 ‘이상한 수재(秀才)’임이 분명하다.

수능 만점자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올봄 대덕구시니어클럽의 김문규 관장으로부터 들었던 이 ‘이상한 수재’가 떠올라 그의 근황을 물었더니 그를 연결해주었다. 그는 내년 1월 프로 복싱선수로 정식 데뷔한다고 했다. 복싱챔피언 꿈을 위한 첫 관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는 66kg 웰터급이다. “몸 상태가 완전하게 준비 돼 있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가 존경하는 복서가 있다. 필리핀의 41세 프로복서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가 그의 롤모델이다. 파퀴아오는 한때 8체급의 세계타이틀을 석권한 필리핀의 영웅이다. 필리핀 하원의원을 거쳐 현재는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현역으로 뛰는 프로복서다. 

“파퀴아오는 어렸을 때 길에서 껌을 팔던 가난한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시합이 있는 날에는 필리핀의 범죄율이 제로로 떨어질 만큼 시청률이 높고 인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안 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파퀴아오의 대단한 기록이나 인기보다도 ‘이웃들과 함께 하는’그의 삶의 방식이다. 

“파퀴아오는 한번 시합에 350억 원 정도를 법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차를 타지 않고 그 돈을 자신의 식구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식구’는 그의 복싱을 직간접으로 도와주는 모든 조직원들을 말한다. 파퀴아오는 자신이 버는 거의 전액을 식구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있다고 안 군은 말한다. 그는 “파퀴아오의 파급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파급력’은 ‘더 많은 어려운 이웃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변호사보다 큰 파급력 부러워 복서의 길

그는 파퀴아오의 파급력을 부러워한다. 안 군이 복서의 길을 가는 진짜 이유다. 파퀴아오처럼 세계챔피언이 되어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한때는 변호사도 그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변호사의 파급력은 복싱에 미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과 경쟁하며 학점 따고 시험보는 데 힘을 쏟다가는 이웃을 돕는 여유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변호사 등의) 공부는 할수록 바보상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는 그의 말이 그의 생각을 말해준다. 

안 군은 파급력이 크든 작든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면서 복서의 길을 걷고 있다. 복싱은 그가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가장 먼저 선택한 길이다. 이웃을 돕는 데 법이나 경영학 공부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런 공부를 할 생각은 아직은 없다.

유명한 복서가 된 뒤에야 이웃에 봉사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해오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매주 보육원 아이 5~6명을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재우며, 독거노인이나 쪽방촌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였다. 그가 고교 때 주식에 ‘손을 댄’것도 이웃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때 주식으로 번 5000만 원은 전부 이웃에 기부했다. 

그는 지금도 시간 나는 대로 독거 노인들을 찾는다. 요즘은 용인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베지밀과 쥬스를 돌리고 있다. “제가 사는 동네 (독거) 어르신들 중에 제 얼굴을 처음 보는 분은 없어야 된다”고 그는 말한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고향 대전을 찾아서도 그의 이웃돕기는 계속된다. 처음엔 그의 진로를 걱정했던 부모님도 지금은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 있다.

안 군은 특별한 수재임이 분명하다. 모든 수재들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 군의 성공 여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가 가는 길 자체가 이미 성공의 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린 이런 길을 가기 위해 애써 공부도 하고 돈도 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아무리 벼슬이 높고 돈을 많이 벌어도 이웃과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한 삶이 아니다. 안 군은 이미 성공의 길을 가고 있다. 

가만 보면, 이런 특출한 수재는 아니어도 어려운 이웃돕기에 팔을 걷어부치는 따듯한 이웃들이 꽤 있고, 많든 적든 선뜻 사회에 기부금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성공의 주역이고 수재들이다. 우리 곁에 이런 수재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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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2019-01-18 12:06:07
권투가 좋아질 듯...
훌륭한 사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