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수필가·전 충남도 서산부시장

어느 지자체에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간행물을 받았다. 비닐봉지에 들어있었다. 봉지를 열어 들어 있는 것을 꺼내고, 주소 라벨을 뗀 다음 봉지는 분류배출용 바구니에 넣었다. 그 간행물만이 아니다. 여러 곳에서 많은 책자 홍보물을 비닐봉지에 넣어 보내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어느 공공기관에서 비닐봉지에 넣어 보낸 월간지와 탁상용 달력을 사흘 앞뒤로 받았다. 크기와 두께가 비슷하니 한 봉지에 넣어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이미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판단으로 기다렸다 올해 가을, 콜센터에 전화하여 의견을 말했다.

“같은 시기에 보내는 것이니, 봉지 하나에 두 가지를 한꺼번에 넣어 보내면 비닐봉지 사용을 줄일 수 있고, 우편료와 인건비가 절약되며, 나아가 집배원들의 업무량도 경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콜센터에서는 관계 부서에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 다른 일로 전화하며 겸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진행상황을 물으니, 연금지 우송료는 이미 우정사업본부와 할인 계약되어 변경이 어렵다는 대답이었다. 내용물이 물에 젖을까봐 비닐봉지를 사용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기관과 공공기관 간에 적극 협의하면 가능한 일로 보이는데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가기천, 전 충남도의회사무처 총무·법제담당관, 전문위원

이 한 가지만으로도 20만 장이나 되는 비닐봉지를 쓰지 않아도 되고, 큰 액수의 우편료,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외면하는 사고가 안타까웠다. 이미 책이나 신문을 종이봉투에 넣었거나 띠지를 사용한 것을 받아보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나 불편이 없었는 데도 말이다. 

현대를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에 이어 플라스틱 시대로 불릴 만큼 플라스틱과 비닐은 일상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영어권에서는 비닐봉지를 플라스틱 백(plastic bag)이라고 하듯 비닐과 플라스틱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비닐봉지는 사용에는 편리하지만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는 최소 20년에서 수 백 년이 걸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비닐봉지 한 장이 175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세계에서 1년 동안 사용되는 1회용 비닐봉지가 5조 개쯤 된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태평양 한 곳에는 한반도 면적의 몇 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있는데 대부분 플라스틱과 비닐이라고 한다. 엄청난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태국에서 죽은 돌고래를 해부하니 위 속이 80여 장의 비닐봉지, 스티로폼으로 가득 차있어서 먹지 못해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선진 외국보다 훨씬 많은 비닐봉지 사용량

우리나라의 비닐봉지 생산량이 2015년에 216억 개이며, 연간 사용량은 1인 당 420개로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 이상 사용하는 셈이다. 스페인은 120개, 독일은 70개이고, 핀란드는 4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비닐봉지 사용량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자 일정규모 이상의 도·소매점에서는 무상제공을 금지하는 법까지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봉지 값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고, 끔찍한 일까지 있었으니 정착까지는 아직 먼 모양이다.

올해 호주에서는 그린피스를 중심으로 ‘비닐봉지와 작별하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여 몇 달 만에 15억장을 줄임으로서 사용량의 80%가 감소했다는데, 관심과 노력에 따라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의 문학에 못지않게 울림을 준 실천은 자연사랑 이었다. ‘생명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쓴 선생은 ‘사람은 지구에서 나오는 이자만 가지고 살아야 한다’며 소비를 줄이고 쓰레기는 되도록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찌꺼기는 말려서 돌 위에 올려놓아 새나 동물들이 먹도록 하고, 썩는 쓰레기는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물론 비닐은 거의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환경사랑의 증거요 교훈이었다.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는데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 우선 공공기관부터 종이봉투나 띠지를 사용하는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빗물에 젖은 우산을 넣는 비닐 커버 대신, 빗물제거기로 대체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혹시 편의성이나 관행으로 무심코 쓰고 있는지, ‘바꾸는 번거로움’을 외면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환경을 지키는 일을 돈이나 비용으로만 계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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