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 정치레이더 48] 서대전역KTX, 경제성 아닌 '상징성' 봐야

서대전역 전경. 자료사진
서대전역 전경. 자료사진

‘철마는 달리고 싶다’ 철도중단점인 백마고지 역 팻말에 새겨져 있는 글씨입니다. 남과 북을 잇는 철길이 끊어진지 어언 70년. 최근 남북이 철도 연결에 합의하고 공동조사에 나섰습니다. 이르면 올해 안에 착공식도 가능하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리고요.

정부는 내년 예산에 남북 철도와 도로를 잇는 비용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야당이 세부 내역이 부족하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예산 확보가 잘 이루어질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하지만 남북이 단절된 길을 이어 교류를 시작한다면 ‘철마의 꿈’도, ‘우리의 소원’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남북 철도 연결은 ‘경제성’을 떠나 한반도 평화의 ‘상징성’을 띠고 있습니다.

충청도에도 달리고 싶은 철마가 있습니다. 충청도는 예부터 삼남(충청‧영남‧호남)을 잇는 관문으로 국토 교통의 허브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상징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승객 감소를 이유로 서대전역과 용산역을 오가는 KTX 열차 4편을 줄이겠답니다. 대신 그 4편을 대전역으로 돌리겠다는 건데요. 대전시와 지역 국회의원들은 “안 될 말”이라면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아 보입니다. 입은 잘 움직여도 몸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코레일이 충청도를 더 우습게 보는 건 아닐까요?

코레일은 서대전역 승객이 적어 적자가 심하다는 이유로 감차의 불가피성을 주장합니다. 적자 노선을 마냥 둘 수 없다는 공기업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코레일 말대로라면 대한민국 철도역 가운데 감차할 곳이 어디 서대전역뿐이겠습니까. 수도권이나 영호남에도 줄이고 없앨 차편과 노선이 왜 없겠습니까.

서대전역 감차가 현실화되면 이용객들은 어디로 갈까요. 대전역으로 가겠지요. 그럼 대전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겨우겨우 역사 넓혀놨더니, 서대전역 이용객들이 몰리면 증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차표 한 장 사기 어렵고, 역사는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가만 보면 코레일이 유독 충청도만 만만히 보는 것 같습니다. 철도 역사(驛舍)건립과 운영의 역사(歷史)를 보면 말 많고 탈 많은 곳이 충청도였습니다. KTX 천안아산역부터 시작해 오송역, 공주역, 최근 세종역까지. 지자체와 정치권 갈등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지, 코레일의 우유부단한 행정이 가져온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2016년 12월 코레일은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서울역~신창역 간 누리로 열차 운행의 전면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아산시와 인근 대학, 지역사회는 인구 증가와 수도권 출퇴근(통학)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여건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근시안적 접근이라며 철회를 요구했지요. 여기에 정치권까지 반발하자 코레일은 이듬해 2월부터 운행을 재개했습니다.

수도권전철이 연장되면서 역사 명칭과 부기명을 둘러싼 지역 대학 간 갈등은 또 어땠습니까. 2006년 신창역은 ‘신창역’과 ‘순천향대역’을 놓고 씨름하다 순천향대를 병기역으로 한 ‘신창(순천향대)역’로 정하고 부기역명으로 한국폴리텍IV대학을 넣었습니다.

KTX 천안아산역 환승역이자 국철인 아산역은 선문대와 호서대가 부기명을 놓고 티격태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산역은 선문대가, 배방역은 호서대가 부기명을 사용했는데요. 대학들이 속한 지역에선 극심한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코레일 정책은-의도했건 아니건 간에-지역사회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고, 그 상처는 지역민들 몫이었습니다.

명확한 기준과 원칙 없는 정책을 툭 던져놓고, 정치권과 지역여론이 압박에 나서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슬그머니 접는 행태. 부디 이번 서대전역 KTX 감차 논란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되지 않기 바랍니다.

전통적으로 역 신설에는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게 사실입니다. 국회의원은 현역 연장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 신설’에 나섰고, 코레일도 적잖은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경제성은 ‘억지 춘향’식으로 끼워 맞췄고, 전철역과 KTX역이 우후죽순 만들어졌지요.

덕분에 고속철은 ‘저속철’로 전락했고, 지역 불균형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이용객 저조로 적자노선이 곳곳에서 발생한 것이죠. 이래놓고 그 책임을 지방정부에 전가하는 건 ‘고객 만족’을 목표로 하는 공기업으로서 무책임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코레일이 지역과 지역을 잇는 국가기간망의 주체라면, 지역민 의견에 보다 귀 기울여야 합니다.

고액연봉과 연말 성과급 잔치라는 오명.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에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 오송역 단전사고로 사장이 장관과 총리에 혼나는 모습. 작금의 ‘코레일 로드’를 보는 지역민들은 이런 공기업을 신뢰할까요.

알짜노선은 민영화시켜놓고, 적자 노선은 없앤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또 지방을 배려하지 않는 교통정책은 공기업이 점점 민간기업화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국가 정책은 눈앞의 돈벌이보다 먼 미래를 보고 시행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당장 이용객이 적다고 차편을 줄이거나 없애는 건, 더 이상 그 동네에서 살지 말라는 으름장이나 다름없습니다.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 불균형 해소라는 국가정책에 역행하는 처사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서대전역 KTX 감차 논란은 남북 철도 연결처럼 ‘경제성’이 아닌, ‘상징성’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줬다가 뺏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습니다. 코레일 본사도 대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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