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비정규직 정규직화, 어디까지 왔나 
1. 배제된 사람들 (대전지역 사례)

일자리 상황판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일자리 상황판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 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선언’이 나온 지도 일 년 하고도 반이 흘렀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제대로 되고 있을까. 정부는 지난 9월 28일 기간제의 경우 93.7%, 파견용역의 경우 84.5%라고 전환 결정률을 발표했다. 수치상으로 보면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곳곳에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는 한숨소리, 정규직이 되나 했더니 도리어 해고되었다는 울분의 소리가 계속된다.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엉터리라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정규직화가 만들어낸 또 다른 그늘을 살펴본다. (편집자)

<연재순서>
1. 배제된 사람들
2. 엉터리 기준과 평가에 내몰린 사람들
3. 자회사라는 이름의 또 다른 비정규직
4.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간접고용 비율 90%로 공공기관 전체 1위였던 인천공항에 방문해 비정규직 없는 공공기관, 좋은 일자리를 약속한 대통령의 행보는 31만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에 희망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앞서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이명박 정부 2012년, 박근혜 정부 2015년에 각각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책이 발표된 바 있지만, 기존 대책은 기간제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 용역 노동자의 경우 고용승계, 표준노임단가 지급 등이 골자였다. 이는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도리어 외주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간접고용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고, 총액인건비상 정원문제로 인해 기간제 채용을 기피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실패를 바탕으로 전환대상을 확대하고, 전환기준을 낮추고 전환 예외사유를 줄인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대책이 마련되었다.  

부처별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정규직 전환현황을 발표했다. 마지막 발표였던 지난 9월 정부의 발표를 보면 계획인원 대비 전환 결정은 88.3%, 전환완료는 48.6%, 기간제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계획인원대비 93.7%, 전환완료는 76.9%다. 발표 수치만 보면 정규직화가 이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공공기관의 비정규직들은 모두 제대로 정규직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정부는 852개 기관 전체 비정규직 41만 6000명이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 중 실태조사에 따라 상시지속업무 인원 31만 6000명이 추려졌다. 10만 명이 정규직 전환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탈락했다. 기관이 전환심의위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계획한 것이 17만 4000명이다. 14만 2000명이 평가도 받아보지 못하고 또 한 번 밀려났다. 전환 완료된 인원은 8만 5000명으로 최초 인원 대비 20%에 불과하다. 평가에서조차 배제된 24만 2000명은 누군가의 자녀이고,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이웃이다. 

기준은 지키라고 만든 것 아니었나요? – KAIST 사례

KAIST에서 5년 이상 위촉연구원으로 일해 온 김여정 씨는 최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너무도 불합리한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다. 정부 정책과 가이드라인을 보고 기대와 희망을 품었지만 기준은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했다. 5년 이상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던 본인을 포함해, 20년 이상 재직한 연구자들까지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남아야 한다는 기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KAIST는 수탁과제 참여인원 791명을 전원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했다. 다년간, 다수의 프로젝트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지만 1%라도 수탁과제에 참여했던 비정규직은 모두 제외되었다. KAIST의 1차 정규직 전환은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전환 기준에도, KAIST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의 심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지만 기관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당사자와의 어떠한 의사소통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20년을 일했는데 상시지속업무가 아니라구요? 

상시지속업무가 아니어서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은 10만 명 중의 한 명인 A씨. 그는 대전에 위치한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20여년을 일하다 올 해 계약만료 통보를 받았다. 정년까지는 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느닷없는 통보였다. 출퇴근 차량과 임원의 업무용 차량 운전을 하던 그는 때로는 파견업체 소속이기도 했고, 기관에 기간제로 직접고용 되기도 했다가, 다시 또 다른 파견업체 소속이 되기도 했다. 소속은 바뀌었으나 이 십 여년을 한 기관에서 일해 온 그를 정부는 상시지속업무를 하지 않는 노동자로 분류했는데, 그가 임기 3년인 임원의 업무차량을 운전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계약기간 만료를 사유로 계약해지, 아니 해고되었다. 

2974명 중 정규직 전환 190명 뿐 – 대전시교육청 사례

대전시교육청의 정규직전환심의윈원회를 통한 전환율은 고작 0.5%에 불과하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평균 전환율이 10%인 것과 비교해 대전시교육청의 기록은 그야말로 참담한 결과다. 기록이 부끄러웠는지 대전시교육청은 이미 수년 전부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던 유치원 방과 후 전담사 192명, 돌봄 전담사 277명까지 이번 전환심의 결과로 오해하도록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추천으로 대전시교육청 전환심의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인사는 “교육청 내부 인사 5명은 마치 1명인 것처럼 한 몸으로 교육청의 입장만 대변했다. 교육청이 선출한 외부 인사 4명도 교육청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는 사람들뿐이었다”며 “운동부 지도자와 같은 전환에 대한 쟁점 직종에 대한 토론을 할 때 9대 1로 싸웠다. 이것을 민주적인 절차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비민주적인 전환심의위원회 구성은 29개 직종 2353명 중 단 13명만이 전환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전시교육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심의를 한 것이 아니라 전환제외 심의를 한 것이다. 

파견, 용역회사 소속으로 각 학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직고용 전환을 협의한 대전시교육청의 노사전문가 협의회도 마찬가지였다. 전환 대상은 대부분은 청소와 야간 당직 직종에 종사하는 70세 이상의 노동자들이었다. 정년 설정의 문제, 정년 초과자의 고용 안정 문제 등에 대한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전시 교육청은 단 네 차례, 총 10시간 남짓 진행된 협의를 통해 619명 중 정년이 안 된 177명만 무기계약으로 전환했고, 정년 초과자들은 1년마다 평가를 거쳐 학교장과 계약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남겨두었다. 심지어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5년 안에 고용을 종료하겠다는 정리해고안과 온갖 차별이 담긴 취업규칙을 내놓았다. 대전시교육청은 직고용으로 전환하고, 정규직화 한다더니, 나이 많다고 해고하고, 차별을 선물했다. 고령의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해고를 유예한 몇 년의 기간 뿐이다. 

기관 특성 무시, 연구단 전체 배제한 IBS

정규직 전환 배제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 종사자들. 자료사진.
정규직 전환 배제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 종사자들. 자료사진.

IBS(기초과학연구원)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MPI)를 참고해 연구단을 기반으로 해당 분야에서 전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그룹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우수한 과학자들이 한 곳에 모여 연구단을 이루어 장기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운영해 기초과학의 역량을 높이고 국가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각 연구단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계획은 연구단이 한시적이라는 이유로 600여명의 연구자들을 모두 정규직화논의 처음부터 원천 배제해버렸다. 

남가현 정의당 정책실장.
남가현 정의당 정책실장.

김두철 원장 취임 후 ‘5년이 후 추가 3년’의 계약 연장이 가능했던 규정을 ‘갱신 기대권’이 생긴다는 이유로 개정해 추가 3년의 계약 연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최근 1년 사이 5년 계약만료만을 이유로 수십 명의 연구자들이 그동안 연구한 결과를 논문으로 출간하는 과정에서 퇴사를 당하고 있어 국민의 혈세로 얻어진 우수한 연구결과들이 출판되지도 못하고 사장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인건비를 적게 지불하려는 목적으로 행정/기술직무자들을 연구직으로 뽑아놓고서 연구직이라는 이유로 전환에서 제외하였으며, 이는 인력변칙운영에 해당되어 과기부 감사대상임에도 과기부는 방관하고 있다.  

최근 중이온사업단 전환과정에서도 본원행정조직/연구단 전환과정보다 2단계나 많은 채용과정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것과 30% 이상이나 되는 임금차이를 갖는 신규직군 신설, 시보기간 운영 등에 대해서 사업단 해당 당사자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고 있다.

중이온가속기 건설구축사업단에서 지난 6년간 연구를 해 온 최숙 연구위원은 “왜 연구기관에서 연구직이라는 이유로 전환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외부기고자가 취재·작성한 기획연재로, 본보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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