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세종역 신설 논란’에 ‘서대전역 KTX 감차’까지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허태정 대전시장. 자료사진.

정치쟁점으로 번진 ‘KTX 세종역’ 신설 문제와 거리를 둬 왔던 허태정 대전시장이 더 이상 유보적 입장을 취할 수 없게 됐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서대전역 KTX 감차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대전 정치권의 무능과 방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KTX 세종역이 신설되면 충북 오송역과 대전의 서대전역이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될 것이란 이야기는 상식에 가깝다. 기존 선로에 세종역이 신설되면 오송역의 ‘세종시 관문’ 역할이 사라지고, 공주역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가뜩이나 쇠퇴일로를 겪고 있는 서대전역이 입게 될 피해도 심각하다.  

대전과 충남·북이 입게 될 이 정도 피해는 서막에 불과하다. 호남정치권이 주장하고 있는 ‘호남선 직선화’가 이뤄질 경우, 서대전역은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천안에서 세종역을 거친 호남선 열차가 호남으로 직접 빠져 나가면 오송의 ‘분기역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서대전역은 근교 통근열차만 오가는 간이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이 서대전역 KTX 감차 카드를 들고 나왔으니, 대전 시민들은 ‘우려했던 현실이 예상보다 빨리 왔다’고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서대전역 착·발 KTX 열차 4편을 대전역으로 옮기는 것이니, 시민들이 입게 될 피해는 미미하다”는 코레일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번에 밀리면 한도 끝도 없이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안겨준 것이 호남선 KTX와 코레일인 만큼, 대전 시민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일단 대전시와 지역 정치권은 “절대 불가”라는 완강한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자기변명이 앞서는 게 문제다. ‘늑장대응 아니냐’고 다그치자, 시는 “그 동안 ‘꾸준히’ 협의해왔고, 노력했다”는 점을 내세우기 급급하다. 코레일을 관장하는 국토교통위원이자 서대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은권 의원(대전 중구, 한국)은 “내가 나서서 코레일 계획을 이미 철회시켰다”고 어깨에 힘부터 주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단식 농성이라도 해서 막겠다”고 결기를 드러냈다.

물론 허태정 대전시장의 반응이 어떨지가 시민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다.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며 구렁이 담 넘듯 민감한 현안을 피해가려 할지, 아니면 이웃 광역단체장들이 그러하듯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며 정면 돌파를 시도할지 미지수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전자에 무게가 실린다. 허 시장은 지난 10월 22일 국정감사를 받는 자리에서 KTX 세종역 신설과 관련한 의원 질문에 “대전 입장에선 유·불리 측면이 모두 있다”며 “서대전역 인근 지역의 경제적 타격이 있을 수 있지만, 충청권이 분열될 수 있는 만큼 상생방안을 찾겠다”고 답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외교술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라도 구사하려는 것이었을까. 

당시엔 용케도 답을 회피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서대전역 KTX 감차’ 문제는 취임 6개월을 맞은 허태정 대전시장의 정치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서대전역에 관심이 집중된 만큼, 서대전역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인 KTX 세종역 신설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도 필요하다. 

전임 시장인 권선택 대전시장은 지난 2016년 호남선 KTX 개통으로 서대전역 경유 열차가 대폭 줄어들자 기자들에게 “대전의 정치력이 호남에 비해 약했다”며 “KTX 호남 노선이 익산에서 단절될 줄은 예측조차 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지금 시민들이 임기 초반인 젊은 시장에게 또 다시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서대전역의 산소 호흡기를 떼려는 시도부터 시장이 앞장서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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