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지난 10월 8일 대전시장과 함께, 내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고등학교 신입생까지 무상으로 교복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무상급식이 초중고 전 학년으로 확대되고 무상교복이 본격 시작된다는 점에서 학부모들의 관심이 컸다. 그런데 대전시교육청이 대전시의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무상교복 사업비는 없었다.

시교육청이 내년에 무상교복을 시작하려면 2만7800 명 분 예산 84억 원의 절반인 42억 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했어야 한다. 나머지 반은 대전시가 대는 것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내년도 시교육청 예산에는 저소득층 자녀 교복비 지원 예산 6900만 원만 편성됐다. 이는 이미 실시해오고 있는 것으로,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무상교복과는 무관하다. 교육감이 학생 학부모에게 한 약속은 한 달 보름 만에 빈말이 되고 말았다.

시교육청은 “예산을 편성할 때만 해도 교육감과 시장의 협의가 안 됐고 교육행정협의회에서 늦게 결정되면서 본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미처 예산을 편성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믿기 어렵다. 교육청 예산안은 교육감과 시장이 관련 내용을 합의한 이후 한 달 반이나 지난 뒤에 나온 것이다. 시간 부족을 이유로 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교육청은 내년 추경에 편성해서 내년 중에는 무상교복을 시행한다는 방침인데 이런 식이면 이 말도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의회 심의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게 예산안인데 왜 시간 핑계를 대는가? 설 교육감의 ‘무상교복 약속’펑크에는 다른 사정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무상교복에 대한 설 교육감의 의지가 불분명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설 교육감은 이른바 ‘무상 시리즈’를 외치는 진보교육감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다. 이 때문에 무상교복 문제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면서 일단 약속을 했다가도 스스로 뒤집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고 있다.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진보 보수 사이에서 설 교육감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교육행정의 비효율과 혼란을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교조 징계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 논란이 있는 사안마다 ‘좌고우면’을 거듭하는 일이 잦았다. 교육감 스스로 한 무상교복 약속조차 2달도 안돼 빈말이 된 것도 오락가락 행정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교육감이 학생 학부모에게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지킬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발생했다면 그 이유를 사실대로 밝히고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일단 말은 뱉어놓고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스스로 뒤집는 행정이야말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한다. 그것이 교육감의 ‘오락가락 행정’에 기인하고 있다면 이보다 큰 낭비도 없다. 무상교복 빈말은 단순한 교복문제가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행정의 스타일’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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