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씨엠립 지도
1. 씨엠립 지도

동북아시아는 일찍부터 중국 대륙의 영향으로 인도에서 발생한 외래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불교사상은 불교도 대중 전도에 중점을 둔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남아는 이와 달리 자기해탈을 강조하는 소승불교(小乘佛敎)와 인도 전통 민속신앙인 힌두교가 널리 전파되었는데,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630년 동안 동남아의 대제국 앙코르왕조의 왕성이 있던 캄보디아의 씨엠립에는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뒤엉켜 있다.

인도와의 해상교역을 하며 힌두교를 받아들인 앙코르 왕조는 지방의 호족출신인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1125~1218)가 전국을 통일한 뒤, 1160년 중앙귀족에 반대하여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자야바르만 7세는 수도 앙코르 톰에 새로 건축한 바이온 사원(Bayon Temple)을 호국 사찰로 삼고, 앙코르톰의 동문에서 약2km쯤 떨어진 곳에 프레아칸 사원(Prea Khan Temple)과 약1.5㎞ 사이를 두고 타프놈 사원(Ta Phnom Temple)을 나란히 세웠다.

프레아칸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하여 1191년에 지은 사원으로서 내세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강한다고 하는 미륵부처를 모신 불교사원인데, 서구의 건축양식처럼 둥근 돌기둥으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또, 타프놈 사원은 어머니를 위한 사원으로서 앙코르에 세워진 많은 다른 사원과 달리 수도원의 기능을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야바르만 7세 사후 앙코르왕조는 불교를 버리고 다시 힌두교를 국교로 삼았다(바이온 사원에 대하여는 2018.11.12. 앙코르톰(2) 참조).

2. 타프놈사원 입구
2. 타프놈사원 입구
2-1. 석재를 뚫고나온 나무 뿌리
2-1. 석재를 뚫고나온 나무 뿌리
2-2. 보석의 방 입구
2-2. 보석의 방 입구
2-3. 보석의 방
2-3. 보석의 방

씨엠립에서는 대중교통이 워낙 미흡해서 택시나 오토바이를 개조한 2인승 툭툭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택시는 1일 100~200달러, 툭툭이는 30~40달러를 주어야 한다. 또, 평균 35도의 열대지방에서는 걷기만 해도 땀이 쉴 새 없이 흐르는데, 게다가 대부분 석재로 지은 앙코르 왕조의 유적을 관람하려면 뙤약볕에 달아오른 석재가 내뿜는 복사열로 이중고생을 하게 되어서 파라솔, 모자, 생수, 수건, 선크림은 앙코르 유적 관광에 필수품이다. 그리고 가장 무더운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는 휴식을 취했다가 오후 탐방을 나서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우리네 시골의 무너진 돌담처럼 구멍이 솔솔 뚫린 돌과 앙코르 지역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황토를 반죽해서 쌓은 벽돌담을 따라가면 타프놈 사원 입구이다. 타프놈 사원은 가로 600m 세로 800m의 직사각형 사원이지만, 사원 전체가 울창한 수목과 이끼가 덮이고 하늘 높이 자란 나무들의 뿌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채 돌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사원 건물들을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는 곤란하다.

특히 앙코르 톰을 비롯하여 앙코르와트, 프놈바켄 등 수많은 유적들이 대부분 검정 이끼가 잔뜩 낀 석재로 남아있는데 반해서 타프놈 사원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 숲속에 감춰지듯 있다.

물론 1861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헨리 모하트(Alexandre Henri Mouhot: 1826~1861)가 정글을 탐험하다가 앙코르와트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이보다 더 울창한 밀림 상태이었겠지만, 무성한 열대나무의 뿌리와 넝쿨들이 금방이라도 사원 건물을 무너뜨릴 것 같은 낯선 모습은 처음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신비로운 과거를 회상하게 해준다.

마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신비한 모습을 연상하게 해주는 이 사원에서는 고고학의 유물 발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기상천외한 사건들의 전개를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하고 해리슨포드가 주연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 1989)를 비롯하여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레이더(Tomb Raider; 2001)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안제리나 졸리가 캄보디아 고아들을 입양하고, 또 씨엠립을 방문하면서 들른다는 재래시장 입구의 카페 레드 피아노(Red Piano)가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레드 피아노에 관하여는 2018.10. 22. 씨엠립 씨티투어 참조).

3. 열대수 스펑나무와 뿌리
3. 열대수 스펑나무와 뿌리
3-1. 스펑나무를 휘감은 이엥나무
3-1. 스펑나무를 휘감은 이엥나무

 

 타프놈 사원은 울창한 밀림과 뒤섞여진데다가 무너진 석재가 마구 뒹굴고 있어서 더욱 어수선해 보이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리고 무너진 건물 내부의 높고 낮은 구간을 여행객들이 보행에 불편하지 않도록 나무 계단과 통로를 설치해 놓았다.

이곳에서는 마치 거대한 악어나 코브라 뱀이 짐승들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거대한 스펑나무 뿌리가 석재 건물을 뚫고 나오면서 건물을 무너뜨리고, 또 스펑나무를 칡이나 등나무 넝쿨처럼 휘어 감고 뻗어 올라가는 이엥나무 넝쿨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유적지에서는 거대한 나무와 뿌리들을 제거하여 무너진 사원건물을 복원 중이지만, 타프놈 사원에서는 이엥나무가 스펑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고 살면서 숙주(宿主)나무인 스펑나무를 고사시키는 것을 막고 또, 스펑나무 뿌리가 석재건물 사이를 뚫고 나오면서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연2회씩 성장억제제를 주사하며 관리한다고 했다.

만일 나무가 말라죽거나 썩어버린다면 그 공백을 지탱하지 못한 사원 건물들이 무너질 것을 염려한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마치 커다란 뱀이 짐승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석재들을 감싸며 뻗어나온 이엥나무 뿌리들을 ‘구렁이 나무’라는 등 그 특징에 따라 수많은 별명을 붙여놓았다. 타프놈 사원을 찾는 관광객들의 포토 존이 되고 있다.

타프놈 사원에는 특별한 방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중앙 건물을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처음 보이는 "보석의 방"이고, 그 방을 왼편으로 돌아가면 "통곡의 방"이다. 보석의 방은 자야바르만 7세의 어머니가 생전에 지녔던 각종 보석과 황금, 비단들을 보관했던 방으로서 방의 벽에 수없이 많은 구멍은 당시 보석을 박아두었던 곳이지만, 크메르 루즈 치하에서 모두 약탈당하고 그 흔적만 남았다.

또 통곡의 방은 그 방에 들어가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면 소리가 크게 울리지만, 통곡이 아닌 말소리나 고함소리는 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사원 전체가 수백 년 된 밀림의 뿌리에 뒤엉킨 모습은 신비감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큼지막한 돌을 다듬어서 사원과 수많은 방들을 돌아보면서 어두운 밤에는 방들의 조명은 어떻게 밝혔을는지 궁금했다.

5. 프레아칸 사원 해자
5. 프레아칸 사원 해자
5-1. 프레아칸 사원 입구
5-1. 프레아칸 사원 입구
5-2. 프레아칸 사원
5-2. 프레아칸 사원
5-3. 프레아칸 사원 부조물
5-3. 프레아칸 사원 부조물

앙코르톰에서 북쪽 저수지의 서쪽으로 약1․3km쯤 떨어진 프레아칸 사원의 프레아칸이란 ‘성스러운 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프레아칸 사원도 앙코르톰이나 앙코르와트로 들어가는 해자를 건너듯이 해자와 돌다리가 놓여있는데, 다리 양쪽 난간에 장식된 선신과 악신의 목이 모두 잘린 채 남아있는 것이 앙코르 톰 남문 입구의 해자 위에 놓인 다리 위의 석상들과 다르다.

프레아칸 사원도 타프놈 사원처럼 무성한 스펑나무 뿌리가 뻗어 나와서 많이 무너졌지만, 타프놈 사원보다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앙코르의 다른 사원과 달리 그리스 건축양식 중 장식이 없이 굵고 높은 도리아식과 비슷한 둥근 기둥으로 지은 건물들이 인상적인데, 12세기 말에 앙코르왕조가 유럽과 문물교류를 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또 앙코르의 다른 건축물과 달리 아주 드물게 미륵불을 모시는 불교 사원이라는 점도 학자들에게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만, 프레아칸사원은 폐허와 수목으로 매우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오랫동안 힌두교를 믿어온 앙코르왕조에서 타프놈 사원․ 바이온 사원과 함께 자야바르만 7세의 대표적 불교사원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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