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민의정치레이더 46] 외교만큼 경제도 박수 받는 포용성장을 바라며

리얼미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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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지율이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잘 나가던’ 지지율이 자꾸자꾸 떨어지는 이유를 살피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국정을 이끄는 통치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1년 반 동안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화두로 외교에 공을 들였습니다. 해외순방도 잦았습니다. 트럼프도 만나고, 시진핑도 만나고, 푸틴도 만났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세 차례나 만났고, 평양도 다녀왔습니다.

해외 순방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성과를 지표로 매기긴 어렵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여전히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공포는 누그러졌지만 안심할 단계도 아닙니다.

그사이 국내 경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는 비단 이번 정부 들어 나온 건 아닙니다. 이명박 때나 박근혜 때나 “살기 좋아졌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4대강’과 ‘창조경제’가 대한민국 경제를 말아먹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그러니 이제 반환점도 돌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만 ‘경제 탓’을 하는 건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질 때’만 기다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기본적으로 먹을 밥이 있어야 ‘첫술에 배부르랴’는 기대와 위안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농가는 이 가을에 빚을 털어 버리고 민족은 이 가을에 분단의 장벽을 털어 버려야 하는데 그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습니다. 올해 책정된 쌀값과 수매량으로는 농가빚의 이자도 안됩니다. 농민은 다 빚쟁이고 노동자는 46퍼센트가 빚쟁이랍니다. 몇 퍼센트 몇 퍼센트의 인상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닙니다. 쌀값이 빚이나 갚을 수 있게 해야지 거기 무슨 딴 수작이 있겠어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현암사, 2003)

통계청이 지난 22일 발표한 3분기 가계 동향 조사를 보면요. 소득 양극화가 11년 만에 최악이라고 합니다. 소득 하위 20%가구 소득은 7% 감소했습니다. 지난 7~9월 나타난 고용시장 둔화와 내수부진이 저소득층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취업자 수는 평균 0.69명으로, 지난해 3분기 보다 16.8%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상위 20%인 고소득 가구의 소득은 큰 폭으로 늘었고, 취업자 수도 평균 2명이 넘었습니다. 한마디로 못 사는 사람은 배가 더 고파졌고, 잘사는 사람의 배는 더 불렀다는 얘깁니다.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한 정부인데, 고용시장은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는 현실입니다. 청년실업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20대의 좌절은 대통령 지지율이 빠지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오늘은 또 어떻습니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가계 동향에서 나타나는 통계상황의 엄중함을 저희가 잘 인식하고 있고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최대한 신속하게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가겠다”고 했습니다.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던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적잖은 부담을 갖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 지지율(52.5%)을 기록했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가계 동향에서 나타난 통계상황의 엄중함만큼 지지율 내림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겁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신 남방정책, 북방정책도 물론 중요한 국정 과제입니다. 우리 안보와 평화를 지키고,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과 협상력을 끌어올리는 대통령의 외교활동은 박수쳐 줄 일입니다. 다만, 외치(外治)만큼 정치‧경제를 포함한 내치(內治)에도 균형을 가져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1일 국정과제위원회 및 대통령자문위원회 오찬간담회에서 한 모두발언입니다. “제가 게으른 탓도 있습니다만, 특히 올해 중반부터는 우선은 외교적 일들, 남북관계 관계된 이런 일들에 굉장히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면서 모든 위원회 회의에 다 참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경제라인 ‘투톱’을 교체하긴 했지만, 얼마나 성과를 낼지 모르겠습니다. 또 ‘책임총리’를 자임하던 이낙연 국무총리가 경제 분야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인데요. ‘실세 총리’로 부각되면서 ‘경제 살리기’가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시험대가 될거란 얘기도 나옵니다.

며칠 전 문 대통령이 경제보다 외교와 안보에 치중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자 자리를 함께 했던 충청권의 한 야당 중진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경제는 이미 실기(失期)했다. 지금 대통령이 경제에 손을 대면 더 거부반응이 오니까 이낙연 총리로 선수를 바꾼 것이다. 이낙연 총리가 문 대통령이 실정(失政)한 경제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면 다행인데, 효과를 못 거두면 총리 바꾸고 다른 사람 가져다 맞출 거다. 그게 문 대통령의 2019년과 2020년 숙제다. 경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철통정권이라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정의 총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 결정에 따라 그 나라의 살림살이가 달라집니다.

“이미 심각해진 경제 불평등 격차 등을 다 함께 우려하고, 앞으로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가 심화할 경우 예상되는 격차 확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해법으로 포용적 성장, 지속 가능한 발전, 사람 중심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나라가 고민하는 거의 공통된 의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찬간담회에서 한 문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입니다.

먹고살 여력이 있어야 정치나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고 참여도 하는 겁니다. ‘포용성장’, ‘지속가능한 발전’, ‘사람 중심’은 배부른 집에서나 나올 이야기입니다. 진보 정치의 아이콘으로 불린 고(故) 노회찬 의원이 그랬죠. “옆에서는 굶고 있는데, 암소 갈비 뜯어도 됩니까? 암소 갈비 뜯는 사람들 불고기 먹으면 옆에 있는 사람 라면 먹을 수 있습니다.”

추위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더 살펴볼 계절입니다. 경제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대한민국이지만, 아직도 연탄 한 장 때기 어려운 이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국가와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이, 손 내밀어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 그것이 포용국가, 포용성장의 첫걸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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